
견지망월(見指忘月)이라는 말이 있다. 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더니 손가락만 본다는 고사성어다. 아마 누구라도 지난 몇달간 챗GPT라는 단어를 한번도 듣지 않고 지나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불과 3개월 전 등장한 챗GPT는 전세계적인 인공지능(AI)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우리 사회에서 챗GPT가 주로 소비되는 방식은 다소 아쉽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몇개의 키워드와 질문을 넣어보고 성급하게 놀라고, 또 거짓말을 한다며 실망한다. 이 당연한 반응이 다소 아쉬운 것은, 지금은 챗GPT라는 손가락이 아니라 그것이 가리키는 달을 봐야할 때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즉 AI에 대한 연구는 1950년대 중반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다트머스대학에서 한 워크샵에 참석한 연구자들은 컴퓨터의 발전속도를 고려하여,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인공지능이 약 한 세대(20~30년) 후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실제로 한 세대가 흐른 1980년대의 AI는 인간의 필기를 이해하기도 어려운 수준이었고, 이를 전후로 인공지능의 겨울이라고 불리는 AI 연구의 침체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AI 연구가 새로운 격변기를 맞이한 것은 약 10년 전 딥러닝 방법론이 등장한 후였다. 바로 이 딥러닝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생생히 기억하는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와의 대결이다.
알파고 이후 AI에 대한 연구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2017년에는 구글 리서치가 제안한 트랜스포머(transformer) 구조가 등장하면서 대용량 데이터를 아주 빠르게 훈련시킬 수 있는 방법이 등장했다. 이후 개발된 AI 모델은 대부분 트랜스포머 구조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더 많은 데이터를 훈련시키는 경쟁이 계속 이어졌고, 이윽고 2020년 부터는 1,000억 개 이상의 매개변수를 가진 모델이 등장하였다. 챗GPT의 기반 모델인 OpenAI의 GPT3나 구글의 LaMDA, PaLM과 같은 모델들이 대형언어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이라고 불린다.
대형언어모델이 등장한 이후 AI 연구자들은 유사한 방법론을 활용해 기대보다 훨씬 더 다양한 분야에서 동작할 수 있는 걸 발견했다. 즉, 목표했던 더 나은 언어 번역 뿐만 아니라 어떤 데이터를 넣어도 충분히 의미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컴퓨터는 글자, 이미지, 비디오 등을 모두 문자형태의 데이터로 취급하는데 이를 변환하여 모델에 입력하면 상상 이상의 결과가 도출되었다.
이후 AI 연구들은 이미지에서 텍스트로, 텍스트에서 이미지로, 동영상으로 다양한 기능을 가진 모델의 등장으로 이어졌고, 이중 텍스트에 기반한 모델을 챗봇의 형태로 더 많은 대중이 사용할 수 있도록 대화형으로 개발한 것이 바로 챗GPT다.
위에서 거칠게 정리한 챗GPT까지의 역사는 우리에게 몇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해준다. 첫째, 챗GPT는 단순히 혜성처럼 등장한 어떤 스타트업의 성공적인 제품인 것만이 아니다. 챗GPT는 컴퓨터과학, 인공지능, 자연어처리, 데이터 사이언스 분야의 지속적인 발전과 연구의 결과물이자, 대형언어모델의 강력한 가능성을 보여준 시금석인 것이고, 챗봇의 형태로된 대중적 시연에 가까울 뿐, 그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둘째, 챗GPT가 시작한 이 AI혁명은 이제 챗봇만이 아니라, 사실상 데이터를 다루는 모든 분야로 확산될 것이다. AI로 인한 변화는 글쓰기를 대체하거나 돕는 기술의 등장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어떤 산업의 근본적인 변화와 그에 영향을 받는 개인의 삶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발전된 AI는 의료, 법무, 디자인, 회계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기존의 전통적인 산업의 구조를 크게 바꾸거나 혹은 전혀 다른 형태의 비즈니스를 만들어내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챗GPT는 최근 AI 기술이 얼마나 단시간 내에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또 빠르게 발전하는 AI의 가능성을 숙고하고 이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챗GPT를 활용하도록 교육 할 것인가, 아니면 일종의 표절이기 때문에 이를 금지할 것인가와 같은 전세계 교육 현장의 혼란은 이를 반증한다.
앞으로 쉼없이 등장할 AI로 인한 다양한 변화를 사회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적절히 흡수하고 활용해낼 것인가, 국제사회로부터 개개인으로까지 이제 이 질문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이 시대의 중요한 화두다. 이 크고도 복잡한 문제에 손쉽게 답을 내기는 쉽지 않지만, 이 중요한 논의는 최소한 저 챗GPT라는 손가락이 가르키는 거대한 AI 변혁이라는 달을 모두가 더 깊이 이해하고 직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점은 자못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