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소개 l 공지사항 l PDF서비스 l 호별기사 l 로그인
독자투고_악의 재발견
오동민 ㅣ 기사 승인 2024-04-01 17  |  687호 ㅣ 조회수 : 73

오동민(게이오대학 문학부)



 어떠한 종교의 교리에서든, 영원한 고통으로 묘사되는 지옥에 진심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있을 리 없다.



모든 사람이 갈망하고, 꿈꾸며, 또 어떤 이들은 평생을 바쳐 수행하며, 믿고 찬양함으로써 통행의 자격을 얻으려 하는 곳은 다름 아닌 천국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천국의 모습은 어떠한가. 끝을 알 수 없는 드넓은 초원에 평화로이 떠다니는 뭉게구름, 어떠한 고통도 고난도 없으며, 시기, 질투, 욕망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악의 없는 선의를 베풀 수 있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곳이다.



 어떤 사건도 벌어지지 않고 얼굴엔 평온한 미소를 띈 채 권태로운 일상이 무한히 반복되는 곳. 이러한 악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서 영원히 유락한다는 것이 진정 행복한 일인가? 온갖 사건들이 모두 ‘선’의 형태로 끝이 난다면, 과연 우리에게 자유라는 것이 있다 말할 수 있는가? 어쩌면, 악이 있는 세상이 더 행복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



 종교 철학에서 유신론자들은 무신론자들의 ‘악이 만연한 현세’가 신이 존재하지 않는 증거라는 주장에 대해 인간의 자유의지로 그 해명을 시도했다. 인간은 선과 악을 선택할 자유를 얻게 됐고, 우리가 부여받은 권리를 남용한 결과 악으로 혼란스런 세상이 형성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태어나자마자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어린아이들의 수난은 어찌 설명될 수 있는가? 이를 무신론자들은 ‘불 필요악’이라 칭하며 신의 ‘무능’을 주장하기 시작하였기에, 유신론자들은 최상의 선이라는 개념을 등장시킨다. 이것은 악이 만연한 세상에서, 다시 말해 신이 있으리라 생각할 수 없는 세상에서도 선행을 자처하고 신을 찬양하는 의인의 모습이야말로 신이 진정으로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이라는 개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의인의 탄생을 기다리며 마음 쓰라리고 삶까지 포기하게 만드는 악의 구렁텅이에서 하루하루를 살게 된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의인이 되지 못하는 대부분의 우리들은 그들을 위해 희생하는 들러리에 지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되는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삶의 고난들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



 매미 우는 여름방학, 매미도 울다가 지쳐갈 시간까지 잠을 자던 때에 우리가 수면의 소중함을 느낀 적이 있던가. 시험을 앞두고 카페인으로 꿈나라에서 보낼 시간까지 빼 와서 공부하며, 수면 부족에 고통을 느낄 때 비로소 마음 편히 자는 행위가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필자는 저번 가을학기에 수강하던 과목이 많아 시험 기간에 매우 촉박하게 공부해야 했다. 그런 와중에 유도부 행사까지 겹쳐, 도장에서 제대로 된 이불 하나 없이 누워 하루에 4시간 수면하며 유도 훈련과 행사, 수업과 시험공부를 병행해야 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니 그저 방 침대에 누워 멍하니 보내는 시간을 정말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하지만 방학 중인 지금은 또다시 한없이 자는 행위에 대한 갈망을 잃고 말았다.



 이렇듯, 인간은 반복되는 행복에 쉽게 적응한다. 그래서인지 행복한 인간은 보통 옷으로도 감출 수 없을 만큼 가득 배가 부른 채 한숨을 푹푹 쉬는 모습으로 상상되기도 한다. 이러한 우리들은 풍족한 지금의 상황이 행복한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



‘행복한 상황에 행복한 감정이 항상 동행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우리는 여태껏 많이 경험해 왔다. 우리의 목을 축이는 행복의 샘물은 더 이상 우릴 기쁘게 하지 못하고, 사소한 통증부터 거대한 고난들까지 악의 그림자만이 그 흉악한 모습을 우리 눈 앞에 드러낸다.



 하지만 필자는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이런 ‘악’의 존재들을 반드시 나쁘게만 바라보진 않는다. 맛없는 음식을 먹어보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행복을 알지 못한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여행자들이 가장 맛있는 물의 맛을 아는 법이다. 



 우리 주변에서 우리를 화나게 하는 악인들, 머릿속에 떠오르는 바로 그 사람들이 없었다면, 우리를 사랑해 주고 선행을 베풀어주는 고마운 사람들의 존재의 소중함을 잊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악’의 역할을 다시금 발견할 수 있다. 생각만으로 넌더리 나는 그들이 없었다면 잃어버렸을 따듯한 마음을 떠올리며, 여태껏 지나치게 신경 써왔던 악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기사 댓글 0개
  •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댓글쓰기 I 통합정보시스템, 구글, 네이버, 페이스북으로 로그인 하여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확인
욕설,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01811] 서울시 노원구 공릉로 232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 최초발행일 1963.11.25 I 발행인: 김동환 I 편집장: 심재민
Copyright (c) 2016 SEOUL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