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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여백을 찾아서
박종규 ㅣ 기사 승인 2024-11-02 20  |  695호 ㅣ 조회수 : 35

 과잉의 시대다. 무슨 과잉이냐면, 자극의 과잉이다.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않으니 흥미를 끌 만한 정보나 노래, 영상, 게임 등 재밌는 것들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클릭 몇 번이면 지구 반대편의 소식까지 접할 수 있다. 디지털뿐 아니라 음식 역시 점점 자극적인 것들이 많아지고 있다. 스스로 통제하면 그만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심리학에서는 이와 같은 상황을 코끼리와 기수에 비유한다. 코끼리 위에 올라탄 기수는 마치 잘 조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코끼리가 흥분했을 때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못한다. 결국 이러한 환경에서 벗어나는 방법밖에 없다. 자극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아보다가 템플스테이를 추천받았다. 예약한 절은 충남 서산에 위치한 부석사로 조용하고 사람이 많지 않아 잠깐 쉬었다 가기 좋다는 평이 있었다.



 서산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산길을 올라가다 보면 부석사 정류장이 보인다. 정류장에서 절에 연락하면 직원이 데리러 온다. 절에 도착하면 간단히 절에서의 생활을 설명해준다. 설명에 따르면 이곳의 룰은 간단하다. 식사 때가 되면 식사 종을 울려주니 공양을 먹으러 오면 되고, 저녁 6시, 새벽 5시, 오전 10시에 각각 예불을 드리는데 원하면 참가할 수 있다. 불가에서는 식사를 공양, 부처님께 드리는 예배를 예불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도착한 숙소에는 간단한 이부자리와 작은 책상 하나만 놓여 있었고, 풀벌레 소리를 제외하면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관성대로 핸드폰을 꺼내 데이터를 켜고 SNS를 보려 했지만, 이대로 데이터를 키고 나면 이곳에 온 목적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책이라도 읽자는 생각으로 핸드폰 전원을 끄고 이승우 작가의 『생의 이면』을 읽었다. 이 책은 소설가인 ‘나’가 다른 작가인 ‘박부길’이라는 남자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 그의 작품을 탐색하며 그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내용이다.



 그렇게 책을 읽던 와중 식사 종이 울렸다. 식사는 비빔밥과 된장국이었다. 된장국에는 미처 풀리지 않은 된장 뭉치들이 있었는데, 고기인 줄 알고 씹어먹다가 낭패를 보기도 했다. 평소에 먹던 단백질 위주의 식사와 거리는 있었지만 맛있게 먹었다.



 밥을 먹은 뒤에는 저녁 예불이 기다리고 있었다. 설교 없이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염불을 외우는 예불을 진행했다. 산 위에 있는 절이라 그런지 불자가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 염불을 들으면서 불상의 얼굴을 오래도록 응시했다. 불상은 석가모니의 얼굴을 본떠 만들어졌는데 그 눈빛에서 평온함이 느껴졌다. 불교의 교리에서는 깨달음을 얻으면 계속되는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의 경지에 오르고 욕심, 성냄, 어리석음 총 세 개의 번뇌에서 자유로워진다고 하는데, 나도 깨달음을 얻는다면 저런 표정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예불을 드리고 난 뒤 숙소에 돌아와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조용한 숙소에는 아무런 자극도 없이 정말 빈 공간 뿐이었다. 빈 공간 속에서 점점 감각이 살아나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평소 생각하던 것들을 하나 둘 꺼내서 정리해나갔다. 자극에서 벗어나고 싶거나 잡생각이 많은 학우가 있다면 템플스테이를 적극 권한다.


박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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