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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8호 만평
조유빈, 류제형 ㅣ 기사 승인 2020-11-16 17  |  638호 ㅣ 조회수 : 236

어떤 재판: 이슬람 vs 프랑스

안민석 (기초교육학부 강사,프랑스 역사 전공)



  유례없는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는 대개 두 가지다. 그 이면에 매우 복잡한 사연이 존재하거나 아니면 그냥 미친 자의 소행이거나.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이 발생한지 5년 만에 그 보다 더 충격적이고 야만적이기까지 한 테러가 다시 프랑스에서 발생했다. 바로 그 반문명적 야만성 때문에 일찍이 프랑스혁명의 주역들에 의해 폐기된 참수(斬首)가 21세기에 그것도 ‘문명국가’ 프랑스에서 백주 대낮에 버젓이 자행됐다. 이 충격적 사건의 원인은 무엇인가? 강력한 용의자인 러시아 체첸 출신 18세 난민 청년이 현장에서 사살됐기 때문에 범행 동기에 대한 명확한 정보는 영원히 알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정황상 이 무슬림 청년의 광기를 끌어낸 계기가 프랑스와 이슬람 세계 사이에 존재해 온 매우 복잡한 사연에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자, 그렇다면 가장 공인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진실에 접근해 보자. 사건의 두 당사자인 프랑스와 이슬람을 역사의 법정에 세우고 마땅히 제기해야 할 질문들을 던져보자.



  그런데, 누가 피고이고 누가 원고인가? 여기서 피고라 함은 무죄 입증의 책임이 있는 쪽을 말한다. 프랑스인들의 시각에서는 자신들은 순수한 피해자일 뿐, 만약 무죄를 주장한다면 테러를 자행한 무슬림들이야말로 변명이 필요한 당사자들이다. 반면, 무슬림들은 테러라는 행위 자체는 명백히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자신들을 그렇게까지 궁지로 몰아넣은 프랑스의 역사적 책임도 같이 짚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다 공정한 재판을 위해 그리고 불필요한 반복을 피하기 위해 이번엔 프랑스를 피고석에 앉혀보는 것은 어떤가? 지금까지 무슬림은 무수히 많이 그 자리에 앉아 봤으니 말이다.



  피고인석에 앉은 프랑스에 아마 무슬림측은 가장 먼저 프랑스가 유독 무슬림들의 종교 활동의 자유를 제약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을 것이다. 심지어 똘레랑스의 나라라고 자부하면서 말이다. 프랑스의 답변은 명확하다. “우리는 당신들의 종교를 억압하지 않았다. 프랑스는 그 어떤 나라보다도 종교 활동의 자유를 옹호한다. 그러나 공공장소에서 공공연하게 종교 행위나 종교적 상징물을 과시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우리가 말하는 똘레랑스란 종교전쟁의 산물이며 그 정신은 타자의 신앙과 진리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자는 데에 있다. 그러기 위해선 신앙은 사적 영역에 남기고 공적인 공간에서는 그것을 과시하지 않도록 자제해야 한다.” 즉, 프랑스가 보기에 무슬림은 프랑스의 똘레랑스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똘레랑스는 누구나 무엇이든 해도 되는 자유가 아니라, 평화를 위한 신사협정이고 신앙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선 안 된다는 역사적 합의라는 것이다.  그러자 무슬림측이 다시 묻는다. 종교마다 신앙의 실천 방식이 다른데 프랑스는 기독교의 기준에서 이슬람 신앙을 재단하는 것이 아닌가? 이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세속적 자유주의의 원칙에도 어긋나는 게 아닌가? 혹시 이것이 오랫동안 이슬람 세계를 식민통치한 경험에서 비롯된 제국주의적 우월감의 산물은 아닌가? 이에 대해 허심탄회한 프랑스인이라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프랑스가 제국주의와 인종차별의 유산을 완전히 청산했다고 말한다면 오만일 것이다. 그러나 세속주의와 공화주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있어서만큼은 프랑스가 세계에 기여한 바를 인정해야 한다. 특히 엄격한 정교분리와 세속주의 원칙에 대해 프랑스만큼 충실한 나라도 없다”고 말이다. 즉, 무슬림들은 기독교 중심주의라고 보지만 사실 그것은 프랑스의 세속주의가 기독교적 배경에서 발전했기 때문에 생긴 오해이며, 프랑스 영토에서 생활하는 한 이 정도의 역사성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슬림측의 심문은 논리적 수순에 따라 다음과 같이 이어질 것이다. “프랑스의 똘레랑스 전통과 세속주의 이데올로기가 과시적 종교 활동에 비판적인 것을 잘 알겠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하더라도 《샤를리 에브도》지의 ‘만평’은 도가 지나친 것이 아닌가? 이것은 표현의 자유의 선을 넘어선 이슬람과 무슬림 공동체에 대한 혐오의 표현이 아닌가?” 이 공격에 대한 프랑스의 준비된 답변은 이렇다. “무슬림들이 느끼는 불쾌감은 당연히 이해할만하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에는 어떠한 성역도 없어야 한다. 《샤를리 에브도》지 같은 프랑스 언론들이 이슬람만 풍자의 대상으로 삼은 것도 아니지 않은가? 예수든, 공자든, 무함마드든, 그리고 살아있는 교황이든 그 누구도 표현의 자유에서 예외는 없어야 한다.” 즉, 무함마드 만평에 대한 과도한 분노 자체가 ‘표현의 자유’라는 세속적이고도 보편적인 권리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한다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몰이해라고? 결국 나올 것이 나오고야 말았다. 격분한 무슬림측은 즉각 응수할 것이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몰이해라고? 정말 당신들의 표현의 자유에는 성역이 없다고? 그렇다면 ‘나는 샤를리 쿨리발리’라고 한 프랑스 코미디언 디외도네 음발라는 왜 체포했는가? 표현의 자유가 성역이 없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조롱이나 특정 집단에 대한 무차별적인 일반화를 ‘혐오(범죄)’로 규정하는 ‘정치적 올바름’과는 어떻게 양립가능한가? 이슬람이 아니라 유대인이나 여성, 흑인에 대해서도 《샤를리 에브도》지 같은 언론들이 절대적인 표현의 자유를 과연 행사할 수 있는가?” 무슬림측이 이야기하는 것은 유대인이나 여성, 흑인 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지난 시절 서양이 쌓아온 가치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기에 함부로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지 못하면서, 오직 이슬람에 대해서 절대적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며 이율배반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아울러 무슬림측은 한걸음 더 들어가, “프랑스와 서양의 극우 세력들이 무슬림 이민자들과 진정한 다문화주의에 대한 공포심을 표현의 자유라는 반박 불가능한 가치 뒤에 숨어서 조장하는 것은 아닌지, 그들이 진짜 지키고자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적나라한 백인 ‘부족주의’ 아닌지” 따져 묻는다.



  일단, 재판의 진행 상황은 여기까지다. 무슬림측의 이 마지막 의구심과 질문에 대해서는 아직 프랑스측으로부터 의미 있는 답변이 제시된 것 같지 않다. 그러니 현 상황에서 평결은 아직 시기상조다. 물론 이것은 테러범들에 대한 평결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