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탈피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
-인간의 마음은 언제 성장하는가?
얼마 전 기자는 갑각류의 탈피를 인간의 성장에 빗댄 흥미로운 비유를 접했다. 인간의 신체는 겉은 말랑한 대신 속에는 단단한 뼈가 있다. 반대로 갑각류는 그 겉(껍데기)이 단단하고 속이 말랑하다. 갑각류는 성장을 하기 위해 자신의 껍데기를 벗겨내야 한다. 성장을 위해 자신을 지켜주는 외피를 벗는 탈피(脫皮)가 필요하다.
속이 물렁한 갑각류에게 껍데기는 스스로를 지킬 유일한 방어 수단이다. 그런 껍데기를 벗는 순간은 아무리 힘이 세고 강한 갑각류라 한들 가장 공격에 취약하며, 한없이 약한 순간이다. 이를 두고 뇌 과학자인 장동선 박사는 “인간의 몸은 척추동물이지만 인간의 마음은 갑각류가 아닐까?”라는 의문을 남긴다. 가장 약해진 때를 겪어야 성장하는 갑각류처럼, 인간의 마음 역시 가장 취약해진 그 순간 자라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세상에 백 명의 사람이 있다면 백 가지의 삶이 있을 것이다. 백 개의 삶에서 우리는 수백 개의 이별을 겪고, 수천 개의 야단을 듣고, 수만 개의 상처를 얻는다. 그렇기에 모두의 삶에서 우리는 각각 강해져야 하는 순간이 온다. 물론 그 순간을 겪는 것은 순탄치만은 않다.
우리는 살면서 인생이란 파도에 몇 번이나 올라타곤 한다. 하지만 바다란 언제나 인간에게 친절한 존재가 아니다. 의기양양하게 파도에 올라탄 우리에겐 되레 절망이 덮쳐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면 때때로 파도처럼 절망이 덮쳐오는 삶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어쩌면 너무 당연해서 그 누구도 생각해본 적 없겠지만 우리는 사실 삶을 선택할 권리와 포기할 권리, 이 두 가지의 권리가 공존하는 상태에 놓여있다. 그렇기에 직접적으로 와닿진 않더라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는 삶을 선택할 권리를 택했으며, 이를 누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삶을 지속하고자 마음 먹은 이상 절망 앞에서 마냥 좌절하며 웅크려있기엔 아쉽다.
성장통(Growing Pain)이란 말이 있다. 성장통은 성장기 아동들에게 흔히 발생하는 신체적 통증으로, 말 그대로 우리의 육체가 자라면서 겪는 고통이다. 신체적 성장통은 대다수가 아동기나 사춘기에 겪으며 다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곤 한다. 모두가 성장통은 신체의 성장을 위해 당연한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물리적인 성장에 동반되는 고통은 당연스레 여기며 정신적인 성장을 이루는 과정에는 괴로워만 하는가. 어쩌면 마음의 성장이 몸의 성장보다 더 아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의 성장통은 항상 약한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여기며 부끄러워 한다. 정신적이든, 신체적이든 모든 성장에는 통증이 동반된다.
팬데믹 시대가 연 ‘코로나 블루’ 사태는 더 이상 입에 올리기도 벅차다. 모두가 맞이한 커다란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이 적응의 과정에서 쓰라림에 패배한 이들도 적지 않다. 우울과 상처의 시대를 견뎌보자. 마음의 꺼풀이 벗겨지는 당장은 아프더라도, 벗어날수록 우리는 더 단단해질 수 있다.
천양희 시인의 『밥』이라는 시에는 “궁지에 몰린 마음을 밥처럼 씹어라/어차피 삶은 너가 소화해야할 것이니까”라는 구절이 있다. 삶의 끝자락에 있는 순간에 우리는 강해진다. 탈피가 이뤄지는 가장 연약한 순간을 소화해보자. 그 끝엔 단단한 껍질이 우리를 기다릴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