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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지조(共命之鳥)의 당부
편집장 ㅣ 기사 승인 2021-10-04 18  |  650호 ㅣ 조회수 : 28

▲ 공명지조의 모습



공명지조(共命之鳥)의 당부



  공명지조(共命之鳥)는 하나의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의 설화에서 비롯된 고사성어다. 두 개의 머리 중 하나가 좋은 열매만을 챙겨 먹자 질투를 느낀 다른 쪽 머리가 한쪽에게 몰래 독이 든 열매를 먹게 만든다. 그러나 같은 몸을 공유하던 새는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시기질투에 눈이 먼 어리석은 새가 결국 스스로를 파국으로 몬 것이다. 우리는 이 설화를 통해 ‘공동운명체’라는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다.



  현실 속에는 많은 극단적 대립 현상이 존재한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서로를 반대편에서 볼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기에, 사실 대립 현상의 발생은 불가피하다. 대립 현상 또는 이념 갈등 그 자체는 결코 부정적인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갈등이 표출되지 않은 채 묵혀있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필연적으로 양극화된 사안들보다 그렇지 않은, 즉 소모적이고 병든 갈등이 이 사회에 더욱 만연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극단적 대립 현상은 진보와 보수, 여성과 남성, 노인 세대와 젊은 세대 등 다양한 집단에서 주제를 막론하고 발생하한다. 언젠가부터 정책과 법안을 논할 때는 찬성과 반대만을 이야기하고, 각종 사건·사고를 보도하는 뉴스의 댓글에는 두 가지 반응만 존재하게 됐다. 결국 우리는 수많은 대립 속에서 무엇이 필연적이고 필수적인 갈등인지, 무엇이 소모적이고 병든 갈등인지 판단이 어려운 지경에 도달했다.



  세스 스티븐스 다비 도위츠의 『모두 거짓말을 한다』라는 서적에서는 “다양성이 부족한 성장배경이 혐오를 촉진한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극단적 대립 현상에 서 있는 양쪽은 한쪽을 향해 쉽게 혐오의 표현을 내뱉곤 한다. 요즘 들어 사람들은 부쩍 혐오표현에 대한 경계심이 줄었다. 복합적인 요소가 있을 터라 주된 원인을 확실하게 파악할 순 없겠으나, 혐오표현을 사용하는 그룹의 다양한 경험 부족이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아마 극단적 대립 현상 발생의 배경에는 인터넷 시장이 활성화되며 정보 공급이 필요 이상으로 넘치게 된 ‘정보 과다 현상’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보 과다 현상이 일어난 사회를 살펴보면, 우리는 오히려 다양한 경험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해볼 가능성 자체가 훨씬 증가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기자는 이런 현상의 원인을 다양한 경험의 부족보다는 편향된 경험의 과다를 원인으로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인터넷을 통해 접하는 정보는 개인의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강화할 수 있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의 영향을 받기 쉽다. 물론 경험의 부족이든, 경험의 과다이든 결국 정보의 편식이 혐오표현을 촉진하고 부정적인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킨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처럼 대립 현상이 발생한 배경을 파악하고 그것의 근본적인 해결을 꾀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사실 근원적 문제는 대립 현상 그 자체보다 그를 통해 생겨나는 부산물이다.



  갈등 상황의 주체인 양측이 대립 현상에 장기간 놓이면서 자연스레 드는 생각이 가장 큰 문제인데, 이런 극단적 대립 현상의 주체들은 대다수 어느 한쪽이 반드시 무너져야만 자신의 편 혹은 자기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양극화된 집단에서 사용하는 혐오 표현에 충격을 받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상대의 ‘입장을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대의 ‘존재를 거부하는 것’의 수준에 도달해있기 때문이다. 갈등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를 얼마나 혐오하는지 내보이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 뻔한 말이지만, 갈등을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가 추구하려는 것은 각 집단의 구성원이 평화를 얻는 것이지 괴로움과 자괴감에 빠지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다. 평화를 위한 투쟁은 불가피하지만, 우리가 평화를 꿈꾸는 것은 결국 모두가 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고 싶은 염원 때문이다. 갈등과 대립 현상의 궁극적인 목적이 혐오로 주객전도 돼서는 안 된다.



  다시 공명지조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공명지조의 설화가 사자성어의 형태로 우리 곁에 남아있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우리 모두가 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 우리는 공명지조처럼 운명공동체의 명운을 타고났다.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조연 오일남은 극 중 다음과 같은 대사를 한다. “그만해! 이러다가 우리 모두 다 죽어” 운명공동체임을 직시하지 못한 어리석은 공명지조처럼, 서로가 운명공동체라는 것을 모른 채 병든 양극화 현상을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우리 역시 공명지조의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필터 버블 : 개별 사용자의 정보에 기반해 웹사이트 알고리즘이 선별적으로 어느 정보를 사용자가 보고싶어 하는지 추측한 뒤 사용자들이 자신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 정보로부터 분리될 수 있게 하면서 효율적으로 자신만의 문화적, 이념적 거품에 가둘 수 있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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