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신문 발행 2주 전 기획회의를 통해 각종 아이템과 면 구성을 결정한다. 이번 672호의 기획회의는 2주 전인 3월 13일(월)이었다. 발행 2주 전에 하는 만큼 시의성 있는 아이템을 선정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소수의 인원이 참여해 격주로 발행되는 만큼 기획회의를 늦추기는 어렵다.
이번 672호를 준비하면서 만평을 3번 수정했다. 정부가 주 69시간까지 가능케 하는 노동개혁을 외칠 때, 나흘 간 62시간 근로자가 숨지는 모습이 초기 구성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만평을 수정해야 했다. 3월 16일(목), 대통령이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는 입장을 내보였기 때문이다. 만평에서 주 69시간이라는 멘트는 주 60시간으로 대체됐다.
다시 3월 20일(월),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주 60시간 발언에 대해 “그 이상도 이하도 가능하다”면서 종전 입장을 뒤집었다. 주 60시간이라는 표현은 무의미해졌으니, 만평에 그 이상도 이하도 가능하다는 한 줄을 추가로 달았다.
바로 다음날, 대통령은 “주 60시간 이상은 건강 보호 차원에서 무리”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다시한번 만평이 수정돼야 했고, 급기야 “672호 만평은 최대한 늦게 그리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최종 편집 당일 완성된 이번 만평은, 어쩌다 보니 노동개혁안보다는 대통령의 신중하지 못한 언행을 비판하는 그림이 됐다.
만평을 수정해야 하는 일은 종종 있다. 기획회의 시점 상, 상황이 변하면 2주 전에 기획한 만평도 수정돼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3회에 걸친 만평 수정이 있었던 일은 이례적이다.
노동개혁안 자체도 시대를 역행한다는 비판이 빗발치고 있다. 호주 ABC 방송에서는 지난 14일 한국의 과로사를 ‘Kwarosa’라는 고유명사로 표현했다. 주 52시간 근무에도 쓰러져가는 노동자들 앞에서 노동 개혁이라는 핑계로 과로 사회를 조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청년 노동자가 원한다”는 명분으로 발의했다는 점은 쉽사리 이해하기 어렵다. MZ노조가 반대 의사를 표명하자 주춤하는 모습이 보이지만, 청년 노동자를 방패삼고 있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 초기부터 ‘소통’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출근길 도어스테핑은 지난 11월 28일 이후로 잠정 중단됐고, MZ노조가가 원하지 않는 개혁안을 청년 노동자의 이름을 빌려 발표했다. 대통령실 내부에서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는 건지, 개혁안에 대해 하루가 다르게 말을 바꾸기도 한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말 한 마디로 국민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정책 결정은 신중해야 하며, 관계자와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 3번에 걸친 만평 수정이 방증하는 바는 무엇일지, 외신과 여론이 연신 비판해대는 노동개혁안의 실체가 무엇일지는 각자 판단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