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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조리돌림과 멍석말이
편집장 ㅣ 기사 승인 2023-06-19 13  |  676호 ㅣ 조회수 : 335

 1961년 5·16 군사정변 직후의 일이다. 이정재를 포함한 자유당 시절의 깡패들에게 조리돌림이라는 형벌이 내려졌다. 그들은 “나는 깡패입니다, 국민의 심판을 받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들고 다니며 거리를 행진했다. 조리돌림은 가해자에게 물리적인 피해를 입히지 않지만, 수치심을 느끼게 함으로써 정서적 피해를 안긴다. 언뜻 보면 교양있는 현대인의 형벌이지만, 생각할수록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의 신상이 일반 유튜버에 의해 공개됐다. 유튜브 채널 ‘카라큘라’에 게재된 9분 남짓의 영상에서는 가해자의 사진과 이름, 나이는 물론 출생지, 생년월일, 신장, 혈액형까지 공개하고 있다. 여론은 긍정적이다. 이유는 불분명하지만 대중은 가해자의 신상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긴 징역살이 후에야 출소할 가해자의 신상이, 어쩌다 초미의 관심사로 자리잡았을까.



 여론에 힘입어 김민석 강서구의원도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해당 사건 가해자의 신원을 공개했다. “출소 후 강서구에 오지 말라. 강서구의원으로서 지역 주민들의 건강과 생명권 등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공개 이유였다. 법적 효력이 전무한 발언으로 20년 후의 일을 기약하며 대중의 호응을 얻었다.



 언론의 범죄 사건 보도는 기본적으로 공익성을 띤다. 어떤 사람은 언론이 미담만 보도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범죄가 만연해 있는데 언론이 미담만 보도해서는 안 될 일이다. 언론은 우리 사회에 어떤 위험이 실재하는지, 위법한 행동을 하는 경우 어떻게 처벌받는지 등을 대중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그러나 범죄 사건 보도와 범죄자의 신원을 공개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언론이 한때 범죄자는 물론 피해자의 신상 정보까지 무분별하게 공개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1998년 ‘이혼소송 주부 청부폭력 오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대법원 1998.7.14. 선고 96다17257 판결) 이후로 ‘익명 보도 원칙’이 확립되면서 무분별하게 실명이 언급되는 일은 점차 사그라들게 됐다.



 대법원은 “일반적으로 대중 매체의 범죄사건 보도는 범죄 행태를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사회적 규범이 어떠한 내용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위반하는 경우 그에 대한 법적 제재가 어떻게, 어떠한 내용으로 실현되는가를 알리고, 나아가 범죄의 사회문화적 여건을 밝히고 그에 대한 사회적 대책을 강구하는 등 여론형성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믿어지고, 따라서 대중 매체의 범죄사건 보도는 공공성이 있는 것으로 취급할 수 있을 것이나, 범죄 자체를 보도하기 위해 반드시 범인이나 범죄 혐의자의 신원을 명시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고, 범인이나 범죄혐의자에 관한 보도가 반드시 범죄 자체에 관한 보도와 같은 공공성을 가진다고 볼 수도 없다”며 범죄보도의 공익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주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은 공공의 이익과 별개의 문제로 봤다.



 그러나 공적 관심사가 곧 보도로 이어진다는 점을 미뤄 볼 때, 대중의 알 권리와 보도 대상의 인권 사이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할지는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2000년대 후반에는 강호순 연쇄 살인 사건 등 중범죄 사건이 증가하자 언론은 자체적으로 강력범죄 피의자들의 신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2010년 신상공개제도가 등장하게 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특정강력범죄법’과 ‘성폭력처벌법’이 정하는 특정 요건들에 부합할 때에만 검찰과 사법경찰관에 의해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다고 명시함으로써 신상공개를 둘러싼 논쟁을 조금이나마 해소한 것이다.



 돌려차기 사건은 대중의 공분을 샀고, 응당히 신상공개가 이뤄져야 했다. 그러나 피의자가 아닌 피고인 신분에서 신상공개를 요구할만한 법적 근거가 없었고, 법원은 뒤늦게 신상공개 10년을 명령했지만 이미 민간인에게 신상을 공개당한 뒤였다. 신상공개의 본질은 흐려지고 가해자에 대한 혐오만 남았다. 가해자의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수많은 비방과 욕설 댓글이 게재됐다. 특히 “(당신의) 어머니에게 돌려차기 후 사각지대로 끌고가겠다”는 등 도 넘은 비난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조선시대에는 멍석말이라는 형벌이 있었다. 누군가 잘못한 일을 저질렀을 때 권세가에서 죄인을 멍석으로 돌돌 말아 온 동네 사람들이 후려패게 하는 형벌이었다.



 때리는 사람은 맞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 죄책감 없이 때릴 수 있다. 맞는 사람은 때리는 사람을 볼 수 없어 추후에 보복할 수도 없고, 시야가 차단된 상태에서의 공포심은 배가된다.



 인스타그램이라는 플랫폼은 가해자를 감쌌던 멍석이었다. 인터넷을 사이에 두고 면전에서 내뱉지 못할 욕설을 퍼부으며, 현대판 멍석말이가 이뤄졌다.



 신상공개의 본질은 공익성이다. 가해자가 누군지 알아야 할 이유는 또 다른 범죄를 예방하기 위함이지, 혐오와 분노를 표출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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