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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걸어갈 길
기사 승인 2020-09-27 12  |  635호 ㅣ 조회수 : 278



우리가 걸어갈 길

김태연(문창 ·20)



  기자는 최근 김혜진의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라는 단편소설을 접했다. 소설의 소재는 노인과 로봇 도우미(이하 TRS)다. 주된 줄거리는 TRS가 10년 이상을 식물인간으로 지낸 어머니를 모셔 정신적으로 약해진 보호자의 자살을 막기 위해 어머니를 죽인다는 내용이다. 보호자는 아픈 어머니를 돌보는 것에 지쳐 자살 직전까지에 도달해있었는데, 어머니가 임종했다는 TRS의 연락을 받고 자살하지 않는다. TRS는 ‘어머니를 죽이지 않으면 보호자가 죽는다’라는 딜레마를 겪고 결국 정말 어머니의 산소 호흡기를 제거해 보호자를 살려냈다.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TRS가 사람을 죽였다며 질타하지만, 속으론 ‘TRS가 나 대신 부모님을 죽여주지 않을까’하는 묘한 기대감을 품고 있다.



  정말 현실적이지 않은가? 이런 상황이 곧 눈앞의 현실로 다가올까 무섭고 두려워 불쾌했다. 로봇이 자의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도 두렵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사회적 풍습과 편견과 사고가 날 것의 현실이라 더 두려웠다. 소설엔 단지 간병인이 간병 로봇으로 대체되면서 TRS가 겪는 도덕적 딜레마와 SF적 상상력만 가미됐을 뿐이다. 늙고 병든 자를 버리자 하는 욕망을 품는 건 사실 인간의 본능과 가까울지도 모른다. 비록 사실 여부에 대한 말이 많지만, ‘고려장’이라던가 이와 비슷한 풍습과 설화가 이러한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널리 퍼져있다. 늙은 부모를 버리는, 혹은 버리길 원하는 심리의 기저에 깔린 것은 아마 ‘늙은 것은 쓸모없다’라는 생각일 것이다. 이 잔인할 정도로 익숙한 편견은 이제 우리 사회 깊숙이 스며들어 심각한 갈등을 만들고 있다.



  한국은 현재 심각한 출생률의 저하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만약 지금 상태를 유지한다면, 2025년 한국이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 것이란 전망이 파다하다. 하지만 단순히 초고령 사회에 접어드는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바로 ‘노인혐오’이다.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인해 지하철 등 실내에서 마스크 착용은 일종의 의무가 됐다. 이에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에게 일반 시민이 ‘마스크를 착용해달라’라고 부탁하는 일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부탁에 응하지 않고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겠다'라며 소란을 피우는 일도 매우 흔하다. 당장 지난 9월 16일(수)만 해도, 서울 지하철 1호선에서 한 여성이 할아버지 두 명에게 마스크를 착용해달라 말했지만, 노인들이 이를 거부해 큰 언쟁이 발생했다. 물론 마스크 착용이 매너가 된 사회에서 이를 거부한 것은 해당 노인들의 잘못이 맞으며 분명 비판받을 행동이다. 그런데 비난이나 비판은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한 것에 그쳐야 한다. 하지만 해당 사건과 관련된 기사의 댓글을 보면, ‘틀딱’, ‘늙으면 다 죽어야 한다’, ‘나이가 벼슬인 줄 아냐’, ‘노망났으면 빨리 가라’, ‘산송장들’과 같은 ‘노인’의 존재 그 자체에 대한 비난이 많다.



  나이는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노인이라는 것은 비난의 명분이 될 수 없다. 물론 서로가 살아온 시대가 다르기에 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 가치관의 간극을 좁히기 어렵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특정 세대가 한 집단 전체를 매도해 모독할 만한 사안은 아니다. 노인혐오를 멈춰주길 부탁하는 것은, ‘약자를 보호하자’ 따위의 어설픈 호소가 아니다. 이것은 그들뿐만 아니라 미래의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노인을 대상으로 한 언어적 폭력을 일상처럼 행한다면, 다음 세대는 우리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하는 것을 일상처럼 여길지 모른다.



  “나이는 생각하기에 달렸다. 만약 나이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역대 최고령으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야구 선수 ‘사첼 페이지’는 이렇게 말했다. 단순히 ‘나이’라는 것을 이유로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더 늦기 전에 이제라도 젊은 세대인 우리의 언어와 사고를 되돌아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사회적 문제의 개선은 혐오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존중에서 온다. 당장 '오늘'의 사회만 생각하지 말자. ‘내일’의 사회에서, 우리의 아랫세대가 ‘혐오’보다 ‘존중’을 먼저 배우도록 노력하자. 그들이 지나간 길은 결국 우리가 지나갈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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