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방에 예방을 넘어서
그 끝은 어디에
양지은(안전·18)
‘홍역을 치르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몹시 애를 먹거나 어려움을 겪는다는 뜻의 관용구로 쓰이고 있으며, 이런 말이 생겨날 만큼 홍역은 과거 백신이 개발되기 전 유아에게 감염 시 사망률이 40%에 육박하는 병이었다. 1960년대에 국내 홍역 백신이 도입된 이후 홍역의 발병률은 매우 줄어들게 됐으나 2000년에서 2001년 사이 여전히 전국에는 5만 5천여 명의 홍역 감염자가 발생했으며, 이때 7명이 사망했다. 이에 정부는 ‘홍역 퇴치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단체 예방접종 등 범정부적 관리를 통해 2000년대 중반에 홍역 발생자를 한 자릿수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2014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100만 명당 1명 이하의 발병률을 보여 ‘홍역 퇴치 국가’로 인증 받았다.
지난달 21일(수), 경북 성주와 경남 창원에서 독감 백신을 맞은 70대가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0월 16일(금) 인천의 첫 사망자 발생을 시작으로 기자가 이 글을 쓰는 10월 23일(금) 현재 독감백신 예방접종으로 인해 발생한 사망자 수가 전국 13명으로 늘어났다. 독감백신 상온 노출로 인한 유통·관리 문제부터 백색 침전물 발생, 사망 사건까지 발생한 가운데 보건당국은 "관계 부처와 확인해 개선책을 마련하겠습니다",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정확한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라며 독감백신 자체에는 문제가 없음을 내세웠지만, 운송과정에 있어 여러 허점이 있음이 발견됐고, 이로 인해 시민들은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다.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함께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인 ‘화이자’는 11월 9일(월) 3상 임상시험 참가자 중 코로나-19에 감염된 94명을 분석한 결과 코로나-19 예방에 90% 이상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90% 이상의 효과는 일반 독감 백신의 두 배에 가까운 것이다. 그렇다고 아직 백신의 장기간 안정성과 효험이 입증되지 않았고 백신이 얼마나 유지될지는 미지수이기에 너무 들떠서는 안 될 것이다. 화이자 측은 올해 말까지 2회 투여를 기준으로 1천 500만~2천만 명에게 접종할 수 있는 분량의 백신을 제조할 수 있다고 밝혔으며, 현재 추세대로라면 내년에는 13억 회 투여분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미정부와 과학계는 내년 상반기 중 화이자에서 만든 백신을 포함한 코로나-19 백신이 상용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실현될 경우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처음 발병한 지 12∼18개월만으로 1967년 4년여 만에 승인된 볼거리 백신을 넘어 세계 백신 개발사에서 최단 기록을 갈아치우게 된다.
얼마 전 이뤄진 미국 대선에 재출마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선거 전에 코로나-19 백신이 나오면 결정적 승부처가 될 것으로 여겼으나 화이자의 예방 효과 90%의 중간 결과는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승리 선언이 나온 지 이틀 뒤에 발표됐다. 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FDA와 민주당은 내가 선거 이전에 백신 개발에 성공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라며 “왜 대선 후에 발표해서 나를 애먹이냐”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백신은 ‘인간을 비롯한 동물에 특정 질병 혹은 병원체에 대한 후천성 면역을 부여하는 의약품’이다. 인류의 건강한 삶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백신이 의료적 기능을 넘어 정치적으로 이용되려 하는 현실이 씁쓸하기만 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