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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어떻게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
최종호 ㅣ 기사 승인 2023-05-01 15  |  671호 ㅣ 조회수 : 274


문학은 어떻게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


최종호 (전정·19)


 우리가 사는 21세기는 분명 과학의 시대이다. 어떤 질문에 대해 이곳저곳에서 아무리 많은 말이 쏟아져도 진짜 답을 말하는 것은 늘 과학자의 몫이라고 현대인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온갖 동서고금의 드라마와 영화들로 가득 찬 OTT산업의 시장규모도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새롭게 알게 된 사람과 “어제 나온 드라마 보셨어요”나 “어떤 영화 좋아하세요” 따위로 간단하게 말을 트기 시작하기도 한다.



 우리는 사실 첨단 과학 기술에 휩싸여 사는 것 같지만, 그만큼 문학에게도 신세를 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소위 ‘이성의 시대’에 문학은 죽지 않고 존재하는 것일까. 또 우리는 왜 소설·드라마·영화 속 작가들이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에 쉽게 매료될까.



 사실 유년시절 우리는 무수히 많은 어른들에게 책 읽기를 권장 받았다. 특히, 고전 명작으로 칭송받는 책들은 시리즈 전체가 책장에 꽂혀있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가 자의 반 타의 반 읽었던 소설이 과연 바람직하고 건전한 것일까?



 영미권 작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품으로 선정된, 그 유명한 첫 문장을 가진 『안나 카레니나』는 한 귀부인의 불륜에 관한 이야기이다. 또 어디선가 들어본 『호밀밭의 파수꾼』은 비틀즈의 맴버였던 존 레논을 암살한 마크 채프먼이 암살 당시 몸에 지녔던 책이기도 했다.



 알베르 카뮈의 담배를 물고 있는 표지가 인상적인 『이방인』은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잘 모르겠다”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런 글과 내용으로 수백 장을 채운 책 읽기가 정말로 온 사회가 권장할만한 것인가 심각한 의문이 든다.​



 마찬가지로 소설이나 영화를 만드는 작가들에게 가장 힘든 요구는 아마 살인·불륜·죽음·전쟁·빈곤·폭력 없이 작품을 만들어 보라는 요구일 거다. 문학은 사회가 생각하는 것만큼 안전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 점이 바로 문학이 멸종되지 않은 이유다. 안전하지 않은 문학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즉, 문학은 기존에 우리가 갖고 있던 안전한 고정관념들을 모조리 해체시키는 것으로 자신의 생존을 꾀했다.



 우리는 나름 각자 바쁘게 현대 사회를 살아간다. 그러다 보면 나에게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 사안에 대해선 일말의 관심도 아깝게 여긴다. 머릿속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 카테고리 안에 무엇인가 들어가기만 한다면 마치 물고기가 통발에 걸리듯이 다시 빠져나오기는 힘들다.



 하지만 문학작품은 카테고리를 구분하기 이전에 작품에 담긴 이야기를 먼저 느끼고 어떤 사건에 대해 있는 그대로 직시하게 한다. 그리고 이해를 시도해보기도 한다. 심지어 이미 자신을 가둬버린 통발을 대신 칼로 찢어주기도 한다.



 평소 자주 가는 병원에 NPC처럼 존재하던 의사 선생님도 <슬기로운 의사 생활>을 보고 나면 괜스레 그의 의대 생활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더 글로리>를 보고난 후 매일 쓰던 고데기가 새삼스럽게 무서운 흉물처럼 느껴진다는 평도 있다.



 특히, 소설은 이러한 내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에 특화돼있다. 영화와 드라마는 내가 잠시 딴청을 피워도 장면은 계속해서 넘어가지만, 소설은 그렇지 않다. 한 글자 한 글자 읽어가야만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만큼 독자는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사건·갈등·상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만 한다.



 이 과정이 사람들을 다소 반사회적 존재로 만들기도 하고, 보다 넓은 세계를 느낄 수 있는 존재로 만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늘 사회적 관계를 맺고 안전한 제도권 안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에게, 독서나 영화 시청을 통해 힘을 가득 준 어깨를 잠시나마 풀어줄 수 있다면 꽤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끔 생각의 틀을 깨고 작품 속 도저히 상종 불가능할 것 같은 인간의 삶에 대해 고민해보는 경험이 우리 사회를 조금이라도 더 이롭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과학의 시대에 문학이 멸종되지 않고 연명하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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