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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없는 시대
최종호 ㅣ 기사 승인 2023-09-05 15  |  679호 ㅣ 조회수 : 222

최종호(전정·19)



 당신에게는 늘 마음에 품고 다니는, 소위 영웅이라고 불릴만한 사람이 있나?



 시대의 상징이고, 그 사람이 걸어온 발자취 하나하나가 나에게 영감이 돼주는, 비열한 삶을 살기보단 용기 있는 선택을 하는 그런 사람.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런 인물은 현재의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용기 있는 삶을 살지만 시대의 상징까진 아닌 사람은 많고, 상징적인 인물은 꽤 있지만 비열한 삶을 살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긴 힘들다.



 윤봉길, 유관순 등 많은 독립투사들은 우리가 나라를 잃었던 시대에 일제에 맞서던 상징적인 영웅들이었다. 현대사에 이르러도 영웅은 존재한다. 물론 그들은 매우 주관적인 잣대로 사람들에게 취사선택되어 영웅으로 존재한다. 60년대 성공적인 산업화를 통해 절대적 빈곤이라는 과제를 해결한 박정희. 민주 세력을 중심으로 민주화에 앞장선 김대중과 386세대와 함께 기득권에 저항해 대통령이 된 노무현까지. 이들은 주로 당면한 시대 과제와 함께 출현했다. 한국 사회는 이들을 영웅으로 모시고, 이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각 거대 정당에서 권력을 주고받고 있다. 여하튼 그들은 그 시대에 상징 인물로 남았다.



 인물이 죽고 나야만 영웅이 되는 것일까? 하지만 지금의 한국엔 영웅의 행보를 보이는 사람조차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에겐 영웅이 없는 것일까? 몇 가지 이유를 들어본다.



 첫 이유는 공통된 어젠다가 존재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 사람들을 한가지 과제를 두고 묶을 수 없게 됐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식민 지배, 빈곤, 독재처럼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을 한 데 묶을 수 있는 어젠다가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 일단 사회가 복잡해졌다. 간단한 키워드로 대한민국을 정의할 수 없게 됐고, 하나로 묶이지도 않는다. 아무래도 대한민국이 꽤 먹고살 만한 세상이 돼서 그런 듯하다. 물론 그만큼 사회의 모든 면에서 격차가 커졌다. 그래서 이젠 어젠다가 단순하게 던져지지 않는다. 각계각층에 존재하는 복잡한 어젠다들을 각기 다른 사람들이 당면한다. 이해관계가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남자와 여자, 노인과 청년, 중산층과 서민, 사용자와 노동자, 소상공인 등 사회가 세분화됐다. 같은 나이인 대학생 남녀의 어젠다도 어딘가 사뭇 다를 거라 예상된다. 이 점이 하나의 어젠다에 거대한 세력을 결집하지 못하는 이유다.



 다른 이유는 IT 기술의 발달이다. 이것은 굉장히 현실적이고 기술적인 문제다. 한 인물이 최고 존엄으로서 존재하기가 불가능한 세상이 됐다. 각종 스캔들이나 추문들이 시시각각 언론이나 매스컴을 통해 사람들에게 퍼진다. 그렇기에 한 인물을 두고 일반 시민들에게 절대적인 감정을 입힐 수 없다. 또 국민 개개인도 그것을 원치 않는다. 즉, 통신 기술의 발달로 국민들이 한 인물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평가할 수 있는 환경을 갖게 됐다.



 끝으로 영웅, 최고 존엄이라는 키워드 자체가 지금 우리 사회의 감수성에 전혀 맞지 않는다. 저 키워드 자체로만 손발이 오그라지기 십상이다. 앞선 두 가지 이유에 이것이 선행되는 건지, 뒤따르는 건진 모르겠지만 문화예술 역시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감정들을 쉽게 입히지 못한다. 억지 감동이나 억지 눈물이 담긴 영화에 사람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며 혹평하고, 마찬가지로 억지웃음을 준다고 느껴진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저조해 사라졌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일방적인 인상에 휩싸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앞으로 한 인물을 우상화해 군중들이 그 뒤를 따르는 방식은 오래가지 못할 듯하다. 실제로, 현재 우리 사회는 각 정당의 강경지지자들을 바라보며, 비하 섞인 표현으로 그들을 부르곤 한다. 사람들이 뭐든 절대적이고 일방적인 건 일단 위험하게 느낀다. 과학의 시대에 접어들고, 사람들이 인간사회의 신화적인 면을 모두 걷어내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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