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GTM·23)
모든 관계에 있어 온 힘을 쏟으면 지나치게 강한 압력으로 어느 한 군데 구멍이 생긴다. 그리고 어느 날 뻥 터져 버린다. 최근 들어 몸이 좋지 않았다. 할 일이 산더미였다. 그 덕에 밥도 잠도 잘 취하지 못해 생활 패턴이 망가졌고, 독감 바이러스는 활개를 쳤다. 빈 문서를 열어두고 한 글자도 치지 못하는 날들이 늘었고 해야 할 공부는 많았다. 그 안에서 우선순위를 정하기도 쉽지 않았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도 생각은 다른 곳에 있었다. 말수가 줄었고 주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공감받지 못할 거 같았다.
수험생 시절, 대학생이 되면 하고 싶은 것이 딱 세 가지 있었다. 오케스트라 동아리 들어가기, 학보사 들어가기. 다른 한 가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대학교에 들어오자마자 오케스트라 동아리에 들어갔다. 어릴 적 고작 2년쯤 했던 바이올린 실력으로 연주회에 서는 건 부담이 컸다. 적은 용돈을 모아 개인 레슨을 두 달쯤 다녔고, 합주시간엔 따라가지 못하는 손에 땀을 뻘뻘 흘렸고, 방음실에 가서 혼자 연습했다. 어떻게 보면 지루할 수도 있었을 연습시간이 슈만 덕에 즐거웠다. 물론 악보는 지독하게 어려웠지만. 연주회 당일 무대에서 모든 단원이 하나의 음악을 만들 때 그 속에 나 또한 일조할 수 있음에 행복했다. 하지만 다음 학기는 활동하지 않았다. 전보다 더 어려워진 곡에 이전의 노력을 다시 쏟을 자신이 없었다.
학보사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밌고 보람찼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그 이야기를 내가 전할 수 있음에 설렜다. 시간이 지날수록 글을 쓰는 일이 쉬워지리라 생각했지만, 정반대였다. 노트북 창을 열고 정말 아무것도 못 쓰는 날들이 많아졌다. 취재하러 다니며 사람을 만나기 전에도 후에도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물은 질문과 내가 쓴 글이 누군가를 생채기 낼 수도 있었다. 어떤 글은 쳐다보고 싶지도 않을 만큼 별로였다.
모든 일에는 아니어도, 내가 사랑하는 일에는 항상 열정을 다하고 싶었다. 열정을 다하는 것은 젊은 청년의 의무이자 특권이라 여겼다. 하지만 과한 열정이 과한 압박감으로 바뀌는 걸 제어하는 방법은 몰랐다. 그 압박감이 내가 원하고 사랑했던 일들과 점점 멀어지게 할 줄도 미처 몰랐다. 지금이 잠깐 멈춰있는 순간이라는 걸 알고 있다. 내가 나이가 더 들면 멈추기보단 그저 흘러가는 법을 알 수도 있을까 싶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금세 알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멈춰있다고 믿었던 그때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는 걸. 그 시간이 나를 더 성장시켜 주었다는 것을.
독일의 시인 릴케를 좋아한다. 그의 시를 읽으면 흑백 같은 일상에 색이 칠해지는 듯했다. 나의 지루한 일상들이 그의 시로 인해 아름답게 포장됐다. 1902년 늦가을,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은 육군 사관생도 프란츠 카푸스는 출판사를 통해 알아낸 주소로 무작정 릴케에게 편지를 썼다. 자신의 습작 시와 함께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속마음을 적어서. 그중 릴케가 보낸 열 통의 답장이 그가 장미 가시에 찔려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난 뒤에 책으로 출간됐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수필집이다. 예술을 향한 열정과 고독, 창작자로서의 신념뿐만 아니라 창작의 길에서 어떤 고난과 도전이 기다리는지에 대해 삶의 본질과 함께 이야기해 주었다.
릴케는 프란츠 카푸스에게 이렇게 답했다. 마음속의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인내를 가져라. 당장 해답을 얻으려 하지 말라.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보는 일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