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가예(산업정보시스템전공/22)
삶은 죽음이라는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의 원자들이 우연히 모여, 잠시 생명이라는 이상한 형태로 머무는 것이라 한다. 무한한 시간 속에서 유한한 존재로 머무는 것은 그 자체로 특별하다. 그저 거대한 강물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 불과할지라도, 그 찰나의 순간으로서 분명한 의미를 지닌다. 이 짧은 머무름 속에서도 서로에게 오래도록 스며들고, 아주 잠시 같은 시간 위를 걸었을 뿐인데도 결국 서로의 일부가 된다.
그러나 시간은 야속하다. 우리는 결국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어린 시절의 집, 모든 것을 나눴던 친구, 따뜻했던 할머니의 온기는 이제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그들이 남긴 공백은 약한 바람에도 큰 울림소리를 내며 시큰거린다.
지금의 나를 채우고 있는 것들 역시 언젠가는 흩어진다. 이끄는 깃발이자 받쳐주는 그물인 우리 가족, 십 년이 지나도 언제나처럼 달려와 주는 몽이와 상추, 함께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 시절로 돌아가는 친구들, 서로의 등에 손을 얹고 나아가는 동기들, 우연처럼 다가와 힘이 되어준 인연들, 내 삶의 길목에 서있는 아직은 낯선 이들, 그리고 묵묵히 하루를 걸어가는 나 자신까지. 결국 모두 시간 속에 가라앉을 것이다. 아무리 소중하다 외쳐봐도 들은 체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지나쳐가는 시간 앞에 조용히 멈춰 선다. 숨을 고르고, 지금 내 곁에 머물고 있는 것들을 돌아본다. 그러다 문득, 별일 없던 날에도 한편에 남겨진 장면들이 분명 존재했음을 깨닫는다. 그 순간 흘러가는 모든 순간들에 작은 무게를 얹고 싶어졌다.
그 마음은 작은 반항으로 피어난다. 사진을 찍어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고, 음악을 만들어 사라질 감정을 선율로 남긴다. 향수를 사서 보이지 않는 기억을 담고, 글을 써서 순간을 빼곡히 새긴다. 비록 나의 시간이 작아지더라도 내가 남기는 것들은 한없이 커진다. 나의 존재가 사라지더라도 나의 흔적들은 영원히 살아간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작은 반항을 하며 살아간다. 망각이라는 저주와 지워진다는 운명 앞에서도 서로를 기억하고 추억을 만든다. 끝을 알면서도 영원할 것처럼 사랑하고 무너질 줄 알면서도 멈추지 않고 쌓아올린다. 끝내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낸다. 허무 속에서도 가치를 창조해내는 반복 속에서 우리는 살아있음을 실감한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절대적이라 말하지 않는다. 단단한 철이 결국 녹아 무기가 되듯, 절대적인 것을 거스를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다. 유한한 생명은 오히려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우리의 존재가 누군가의 삶에 닿아 머무른다면 그것은 사라짐이 아니라 확장이다. 그래서 언제나 서로의 손을 맞잡고 머물기 바란다. 때로는 떠내려가더라도 다시 붙잡고 때로는 무너지더라도 다시 쌓아가며, 서로의 삶 속에서 평생을 머물기 바란다. 결국 내가 사랑했던, 사랑하는, 그리고 앞으로 사랑할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단단히 남아 있길 바란다.
태초에 자연스러움을 거스르는 이상한 형태로 태어났다면, 우리는 조금 더 욕심내어 작은 반항을 할 자격이 있다. 서로의 삶에 닿아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이 또 다른 삶 속에 확장되어 영원히 머물기를 바란다. 유한함은 때로 아프고 허무하지만, 그 덧없음이 결국 우리의 순간을 이토록 애절하고 애틋하게 만든다. 거스를 수 없는 것을 거스른다는 것, 이것이 사라질 내 삶이 의미를 지니는 방식이자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