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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켐' 결혼에 대해
기사 승인 2020-10-11 21  |  636호 ㅣ 조회수 : 1359



‘켐’ 결혼에 대해

임민영(문창·20)



  서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티브(Tiv)족은 독특한 결혼 문화를 가지고 있다. 바로 ‘켐 콰세(kem kwase)’다. ‘여성 모으기’, ‘아내 모으기’로 번역되는 이 문화는 남편이 아내의 성적, 경제적 권리를 통제하는 것에 기반한다. 남성 ‘관리인’들이 자신의 누이, 또는 그에 상당한 여성을 서로 교환하는 ‘교환혼’이 실행됐던 과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켐’ 결혼은 남편이 아내의 자녀들에까지 권리를 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교환혼’과는 다르다. 하지만 과거 ‘교환혼’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티브족 사이에서 중요시되고 있는 문화 양식이다. 인류학자 폴 보해넌은 자신의 글 ‘화폐의 사용과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에서 이러한 내용을 자세히 서술했다.



  미국의 인류학자 조지 포스터에 의하면 농민 사회의 경제력은 그들만의 보수성에 의해 유지된다. 농민 사회의 내부에서 수행되는 폐쇄적인 경제적 활동이, 다른 사회와의 활발한 교류 없이도 해당 사회를 지속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들의 ‘비합리적’인 폐쇄성은 ‘합리적’이다. 이는 티브족에게도 해당된다. 예컨대 ‘켐’ 결혼이 당사자인 티브족 구성원들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의 권리가 거래되는 제도의 합리성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폴 보해넌은 ‘화폐의 사용과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을 통해 티브 사람들은 여성이 음식처럼값이 매겨지거나 가치가 쉽게 평가될 수 있다고는 믿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사실 이 문장은 모순적이다. 티브족이 상당 기간 실행해 왔던 ‘교환혼’, 그리고 현재에도 지속하는 ‘켐’ 결혼에서 남성 원주민은 주체에, 여성 원주민은 객체에 위치한다. 반대의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제도의 존재 자체가 이미 여성을 경제적으로 대상화하고 있다. 이는 물론 남성의 입장에서는 경제적으로 합리적이다. 가정의 뿌리인 결혼 관계를 맺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인격적·사회적 지위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의 입장에서도 그러할지는 의문이다. 오로지 성별 때문에 권리와 권력이 경시되고 존재 자체가 도구화된다면, 티브의 여성들에게는 ‘켐’ 결혼이 불평등하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정의될 수 있지 않은가.



  폴 보해넌은 ‘교환혼’이나 ‘켐’ 결혼과 관련해 여성을 교환하는 남성의 권리에 대해서만 논한다. 타인이나 물건과 교환되지 않을, 여성의 권리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러한 권리들이 티브족 내에서 중요시되지 않아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폴 보해넌의 연구에서 철저히 그의 의도에 의해 경시된 여성의 이야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글 ‘화폐의 사용과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에서 티브족의 경제·사회적인 측면을 소개하면서도 티브 여성의 경제활동은 심도 있게 다루지 않는다. 당연하지만, 티브 여성 역시 경제활동을 한다. 그들도 식료품을 교환 및 판매하며 티브 남성들처럼 경제적인 주체로 살아간다. 다만 폴 보해넌에게 있어 티브 여성의 권리와 경제력은 연구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남성주의적인 시선으로 인류학적 연구를 했다고 비판받는 폴란드의 인류학자 말리노프스키를 연상케 한다.



  폴 보해넌은 화폐와 놋쇠막대가 티브족에게 얼마나 중대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며 환혼과 ‘켐’ 결혼에 대해 논했다. 오로지 남성 주체를 중심으로 말이다. 여성의 경시된 권리나 경제활동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물론 ‘교환혼’은 법적으로 금지됐으며 앞서 언급한 폴 보해넌의 글 역시 오래전에 작성됐다. 하지만 이렇듯 구시대적인 제도와 문화일수록 현대적인 시선에서 재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인류가 퇴보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하니까. 좋지 않은 과거를 소수자의 입장에서 재논의함으로써 흑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테니까. 문화‘인류’학이 남성들만이 아닌, 더 많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포괄하게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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