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은 매 순간
채워지는 것
김영창(건시공·17)
우리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장래희망 칸을 채우는 숙제를 받았었다. 어떤 친구는 경찰, 어떤 친구는 의사, 어떤 친구는 선생님. 이유를 물었을 때 제각기 다른 답을 하며 칸을 완성할 수 있는 친구들이 신기했고, 나는 그저 친구를 따라 하며 진심이 아닌 직업을 겨우 채워서 써냈었다. 그리고 이 숙제는 고3이 됐을 때까지도 쉽게 해결할 수 없었고,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같은 고민을 짊어지고 살아갈 것 같다.
사실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수료를 마치고 다음 학년이 되는 것에 대해 뿌듯한 감정을 느꼈었다. 1년이란 시간이 쌓일 때마다 어른에 가까워지고 성장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된 후 진로와 진학 고민을 해야 하는 시기가 오자, 처음으로 ‘시간이 느리게 갔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단순히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성장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나갔고, 나 스스로가 시간에 대해 짊어져야 할 책임들이 늘어난다는 것이 느껴졌다.
막 성인이 되고 대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는 잠시 이에 대해 망각할 수 있는 시기가 있었다. 새내기로서 내가 대학의 주인공이고, 순간순간의 선택에 자유를 느낌과 동시에 그것에 관한 책임을 묻는 사람도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잊고 있던 고민은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다시금 찾아왔다. 내 마음가짐은 갓 성인이 된 그 순간 그대로인데, 위치는 그렇지 못했다. 이미 새로 입학한 대학 구성원들에 의해 나는 밀려나 있었다.
그렇게 지난 2020년에 복학을 한 후, 코로나-19로 인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적응마저 할 수 없었던 1년이 지났었다. 또다시 목표 의식에 대한 고민으로 인생에 대한 허무감이 잦아지던 올해 초, 우연히 보게 된 디즈니 · 픽사 애니메이션 영화 <소울>이 내 고민을 해결해줬다.
영화 <소울>의 주인공 조 가드너는 기간제 비정규직 음악 교사로 유명한 재즈 밴드로 활동하는 것이 꿈이었다. 그리고 교사로서 정규직 전환과 재즈 클럽 활동의 기회가 동시에 찾아오게 돼 부모님과의 갈등을 빚기도 한다. 주인공은 자아실현을 중시해 재즈 클럽 활동을 택하지만, 첫 연주 날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길거리 공사 중인 맨홀에 빠져 죽음에 이른다. 죽음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은 ‘영혼의 세계’에서 새롭게 태어나길 거부하는 영혼 ‘22’를 만난다. 끊임없이 삶의 본질과 목적을 찾으려고 하던 ‘조 가드너’도, 삶 자체에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던 ‘22’도 함께 여정을 겪으며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영화 <소울>은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명제로 대표되는 실존주의 철학을 함의하고 있다. 인간은 존재 의미를 스스로 만드는 창조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라는 뜻이다. 필자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고도 회의감에 빠진 주인공에게 유명 재즈 뮤지션이 해준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어린 물고기가 나이 든 물고기에게 다가가 ‘바다’를 찾고 있다고 묻는다. 이에 나이 든 물고기는 지금 네가 있는 이곳이 ‘바다’라고 알려주는데도, 어린 물고기는 끝끝내 그것을 부정하고 자신이 있는 곳이 ‘바다’가 아니라 ‘물’이라고 주장한다.
앞서 필자의 고민이 해결됐다는 것은 필자 인생의 방향성을 깨달았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필자를 비롯한 많은 현대인이 삶의 목적과 의미에 관해 알 수 없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며, 이러한 본질은 갈구할 때보다는 현재에 집중해서 살아갈 때 비로소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실제로 몇몇 이들에게는 ‘목표 달성’이 곧 ‘행복’이 될 수 있다. 시험에 붙고, 취직에 성공하면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역시 삶의 고통이 목표 달성을 통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진정한 존재 조건은 거창한 것이 아닌 영화 <소울>에서도 그려낸 일상적인 감각이 아닐까. 삶의 순간에 제대로 몰두하며 느끼는 하나하나가 곧 인생의 징표가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