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쁜 농부는 누구일까?
정현우 (기시디·21)
코로나-19의 영향일까. 느린 듯 빠른 듯 흘러가던 1학기 어느 날, 평소처럼 빈둥거리고 있는 나에게 영화를 보러 가자는 친구의 연락이 왔다. 친구의 입에서 나온 영화의 제목은 <레미제라블>. 초등학교 때 현장 체험 학습으로 지겹도록 반복되던 장발장의 저주 때문일까, 영화 제목을 들었을 때 전혀 끌리지 않았다. 하지만 거절을 하자고 보니 나의 일상은 무료했고, <레미제라블> 하면 떠오르는 게 장발장이 훔쳤다는 거대한 빵과 유튜브 알고리즘에 뜨는 웅장한 노래밖에 없었기에 이참에 문학적 소양이나 쌓아보고자 결국 보러 가게 됐다. 재개봉한 영화일 것이고, 명작은 역시 영화관에서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와중에 짧으면서도 길게 느껴진 광고가 끝났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됐을 때, 나의 생각은 뭔가 단단히 잘못됐음을 느꼈다.
중세시대의 배경을 생각하던 것과 다르게 시작과 동시에 아파트와 지하철과 같은 현대 배경이 나왔고, 에펠탑에서 프랑스를 응원하는 여러 시민의 모습 등 내가 예상했던 영화가 아님을 직감했다. 어떤 영화인지 감이 하나도 잡히지 않았고, 그 때문에 영화를 집중해서 더 집중하고 보게 됐다. 그리고 영화에 담긴 것, 영화가 나타내려고 하는 것을 알게 되며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영화는 프랑스가 월드컵을 우승한 직후 프랑스의 한 도시 몽페르메유를 배경으로 한다. 이 도시는 병든 도시이며, 경찰은 시민들에게 위압적으로 행동하고 시장과 그 무리는 부패했다. 아이들 역시 그런 어른들을 보고 자라 다소 과격하다. 그러던 중 일종의 사건으로 경찰이 사고를 친 ‘이사’라는 아이를 제압하려다가 실수로 최루탄을 발사한다. 그 때문에 이사가 다쳤고 하필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는 장면을 다른 아이가 영상으로 찍게 된다. 그 사실을 알아챈 경찰은 그 영상을 없애 이 일을 묻으려 했다. 시장 무리는 그 영상을 확보해 경찰의 약점을 잡으려 하며, 아이들은 그 영상을 얼른 퍼뜨리려 한다. 그렇게 벌어진 추격전은 결국 그 영상을 경찰 쪽이 확보하고 일이 마무리됐지만, 이사와 그 친구들은 이 일에 크게 분노해 경찰과 시장 무리들을 똑같이 폭력으로 복수하려 한다. 그렇게 아이들의 복수전이 벌어지고, 아이들은 경찰들과 시장 무리들을 구타한다. 마지막에 이사가 구타당한 경찰과 시장 무리에게 기름을 뿌리고 화염병을 던지려 하는 극에 달하는 장면에서 이 영화는 끝이 난다. 그렇게 영화가 끝이 나고 스크린 상에는 하나의 글귀가 뜬다. “세상엔 나쁜 풀, 나쁜 사람도 없소. 다만 나쁜 농부가 있을 뿐이오” 빅토르 위고의 원작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글귀다.
영화를 보면 모든 게 비정상적이다. 부패한 시장과 그 무리, 시민에게 위압적인 행동을 당연시하는 경찰, 폭력적이고 범죄적인 행동을 하는 아이들 등 비정상적인 사람들만이 있는 것 같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감독은 위 글귀를 통해 이들이 원래 나쁜 게 아니라 근본적인 원인은 풀과 사람을 나쁘게 만든 나쁜 농부에게 있다고 말한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것처럼 표면적인 원인이 아닌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해 보는 것은 어렵지만 분명 도움이 되는 일이다. 개인이 갖는 문제 또는 나아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과 갈등에서 나쁜 농부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나쁜 농부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 함께 고민해 볼 충분한 가치가 있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