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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저널리즘의 붕괴
익명 ㅣ 기사 승인 2023-03-27 14  |  672호 ㅣ 조회수 : 282

 드디어 한국 사회에 ‘포퓰리즘’과 ‘반지성주의’를 향한 탐닉의 욕망이 창궐했다. 정치권은 갈라치기를 통한 진영 갈등의 정수를 뽐낸다. 혹자는 탈진실 시대라고 일컫는 지금, 진실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각자가 편집자가 돼 우리 진영의 조각난 주장만을 진실로 편집해 수용한다. 동시에 상대 진영에 대한 악마화는 빠른 속도로 능숙하게 진행된다. 자극적인 말 폭탄을 주고받으며 진영의 결속력은 강력해진다. 이제 왜곡된 정치 효능감에 도취된 대중들은 지지 진영을 향한 팬덤을 구축한다.



 뜨겁게 분출되는 양 진영의 욕망을 냉각시킬 키-맨은 언론이었다. 공정하고 정확한 보도로 공론장을 열어젖혀 민주 가치를 실현한다는 구호를 주창했지만, 실행 여부를 묻는다면 ‘글쎄’다. 당장 몇 주 전만 하더라도 유력 일간지의 임원들이 일명 대장동 게이트의 관계자와 금전 거래를 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구독 중인 신문의 1면을 장식한 절절한 사과문을 보며 빈약해진 저널리즘의 권위에 열독자로서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한국 언론계를 관통하는 문제는 포퓰리즘 정치 수단으로의 전락과 그에 따른 반지성주의 세태의 촉발이다.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의심되는 정파성 보도가 난무한다. 이 과정에서 팩트 체크는 누락되고, 언론은 교묘한 표현을 활용해 대중들을 미혹한다. 절정에 달했던 사례가 박원순 전 서울 시장 사망 당시 언론 보도다. TV와 신문, 포털 등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많은 언론사들이 <1보>, <속보>라는 타이틀과 함께 ‘시신 발견’, ‘사망 확인’이라는 문구를 앞다투어 내보냈다. 문제는 아직 경찰의 공식 사망 발표가 이루어지기 전이었음에도 저런 집단적 무책임이 여론을 달궜다는 것이다.



 정파주의에 휩싸인 언론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의 사망 후 몇몇 언론은 ‘사회적 지탄 견디지 못해 자살한 것으로 추정’, ‘도덕성 치명타로부터 기인된 것으로 보여’라며 죽음의 이유를 추정하는 기행을 보였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8년 광우병 파동 때도 마찬가지다. 동물 학대 단체의 영상을 광우병 소의 모습으로 둔갑시켜 보도해 흉흉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음을 기억한다. 보수와 진보 모두 뉴스 소비자가 질식되리만큼 지나치게 편중된 보도를 남발한다. 포퓰리즘으로 점철된 정치권 갈등의 뇌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음은 자명하다.



 앞서 주지했듯, 이런 보도 경향 앞에 대중들은 반지성주의로 매몰된다. 진실은 가려지고 오로지 자극적인 논리로만 <상보>와 <종합>에 이르기까지 진실은 검증되지 않는다. 그리고 대중들은 궁금해하지 않는다. 인과관계가 검증된 진실이 무엇인지 보다는 ‘난방비가 오른 것이 전 정부의 정책 실패 탓’,‘야당 대표를 향한 검찰의 조작 수사’라는 도발적인 표현에 반응한다. 그리고선 상대 진영을 향한 투쟁 모드에 돌입한다. 수단을 가리지 않는 정치권의 갈라치기와 오염된 언론 권력이 일궈낸 촌극이다.



 이것이 오늘날 K-저널리즘의 실황이지만 미약하게나마 반짝거리는 희망을 봤다. 금전 거래와 정파적 보도로 만든 정언 유착의 오명 뒤에 언론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보이고 있어서다. 최근 서울 상계동과 강남을 잇는 새벽 버스의 첫 차 시간이 15분 빨라졌다. 그 첫날의 이야기를 주요 10대 일간지 중 네 곳이 동행해 르포 기사로 담아냈다. 새벽 네 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대부분의 이용객이 5,60대 청소 노동자인 버스였다. 모두가 잠든 새벽 우리 사회 어딘가의 치열한 삶을 싣고 달리는 버스에 동행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을 언론이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거대 도시 서울 속 보이지 않던 누군가를 포착한 세밀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가치로운 언론의 순간들이 참으로 많았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잊히지 않도록 기고를 연재하는 일, 코로나 시대 이주 노동자들의 애환을 듣는 일, 기후 위기 의제를 논의하는 자리에 개인용 제트기를 타고 집합한 모순을 날카롭게 조명하는 일 등 어딘가에 존재하는 사회의 파편을 부지런히도 조명해왔다.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꾸준히 증명해 온 한국 언론이기에 저널리즘의 붕괴를 좌시할 수 없다. 갈등 공화국의 그릇된 욕망이 병리적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 더 이상 부작용의 촉진제가 아닌 억제제로 기능하는 한국 언론이 되기를 소망한다.

 


*투고 학생의 요청에 따라 익명으로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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