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윤(식공·17)
극한 호우와 2차 장마, 그 사이사이를 채운 폭염까지. 기후 재난이 잇따랐던 최근이다. 그 속에서 재난을 다루는 한국 언론의 문제적 태도가 드러났다. ‘가분수’꼴 보도 행태가 근본적인 문제다.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대형 재난의 원인은 대부분 기후 위기에 수렴한다. 언론은 사고 예방에의 기여를 위해 기후 위기에 대한 철저한 학습과 관심이 필요하다. 한국 언론은 그러지 못했다. 제철 과일 다루듯 기후 재난이 집중되는 여름과 겨울에만 보도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마저도 대형 참사가 터져야 목소리를 높인다. 평소에 관심이 없었는데 재난 보도가 제대로 될 리가 있나. 기반을 이루는 ‘분모’가 이토록 취약하니 파생되는 ‘분자’가 재난 수준으로 커져도 속수무책이다.
한국 언론의 재난 보도 양상을 살펴보자. 가장 큰 문제는 ‘중계’식 보도다. 재난이 터지면 부랴부랴 현장을 중계하기 바쁘다. 재난 상황이 수습되면 가차 없이 중계를 철수한다. 이 지점이 문제다. 사고 예방을 위한 점검 차원의 보도와 대책 마련 과정 또한 충실히 감시하며 보도해야 한다. 그게 언론사들이 꾸준히 주창하는 ‘가치보도’ 실현의 길이다. 일례로 서울시는 작년 반지하 침수 사태 이후 대책을 내놨다. 실태가 어떠한가. 피해자들을 위한 아파트의 입주율은 여전히 10%가 채 되지 않고, 자치구들은 침수 취약 지구 지정에 손을 놓고 있다. SBS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을 맞아 실태를 돌아보는 보도를 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미흡한 재난 대응 실태를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보도 또한 피해 예방을 위해 필요한 일일 테다.
전문성의 부족과 수요 공급의 불일치도 분모를 빈약하게 만든다. 세계적인 기후 석학 악셀 팀머만 교수는 한국의 기후 위기 보도를 두고 “일본과 미국과 비교해 기자들의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모든 기자들이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 허나 전문성 있는 보도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노력하는 자세는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MBC가 재난방송센터를 신설하고 재난 전문가 10여 명을 섭외한 것은 고무적이다. 시장 논리에 비춰볼 때도 변화는 시급하다. ‘기후 위기’는 작년 한국인의 구글 검색어 1위였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안임에도 정작 공급자인 언론은 수요 파악에 실패했다. 실제로 YTN 라디오에 따르면 오송 지하차도 참사 당시 방송 3사가 모두 정규 방송을 편성해 불만 여론이 빗발쳤던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사회적 재난 수준으로 기승을 부리는 일명 ‘묻지마 범죄’ 보도도 마찬가지다. 강력 범죄 발생 시 보도를 통해 사회적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언론의 역할이 맞다. 허나 방법이 잘못됐다.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한국 언론의 범죄 보도량이 압도적으로 집중되는 시기는 검찰의 수사 진행 단계였다. 형 선고 이후의 보도는 수사 진행 시기의 18%에 불과하다. 공식적인 수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각종 추측성 보도가 난무한다는 뜻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경찰대학교에 따르면 지난 2021년까지 10년간 살인 사건의 발생 횟수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언론의 보도량은 6배 늘어났다. 이에 대한 부작용으로 시청자들은 범죄 발생 빈도가 4배 가량 높아졌다고 오인하고 있었다. 분명한 과잉 공포 조장이다. 시청자들의 피로감 확산은 덤이다.
언론의 철저한 각성이 필요하다. 재난 저널리즘은 ‘생존’을 위한 효과적 도구임이 입증됐다. 소방본부는 재난 예방에 대한 홍보 보도가 많이 나갔을 때, 실제로 출동 횟수가 적었다고 밝혔다. 범죄 보도는 어떠한가. 당장의 수익성에 골몰해 흉기 사용 여부, 범행 동기 등 자극적인 기사만 일단 던지고 보는 것. 그것보다는 사회 안전망 확대를 촉구하는 공익적 보도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장기적 차원에서 ‘신뢰’를 가져옴은 확실하다. 3분 만에 600m 터널을 집어삼키는 재난이 또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 사회적 유대감을 잃은 누군가가 또 어디서 분풀이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분모를 살찌울 수 있도록 보다 치열한 노력과 긴장이 요구된다. 언론은 의제 설정과 보도 우선순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