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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선
심재민 ㅣ 기사 승인 2024-04-29 15  |  688호 ㅣ 조회수 : 76

심재민(화생공·19) 장애학생지원센터 근로장학생



‘장애는 극복하는 것’이라는 말은 가히 가학적이다.



 영화나 드라마, 뉴스를 통해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장애 극복 서사는 감동적이다. 자폐증을 가진 변호사, 하반신 마비의 스키 선수, 청각 장애를 가진 작곡가의 인생 스토리는 눈물을 자아내고 감동을 선사한다.



 그러나 그러한 서사들은 암묵적으로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규정한다.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순간, 극복할 수 없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약한 인간으로 취급된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비장애인으로 규정되는 사람으로서 다소 조심스럽지만,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장애는 자기 자신의 일부고, 인정과 수용의 대상이다. 우리는 늘 평등을 지향하지만,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는 메워질수 없는 어떤 간극이 존재한다. 현대 사회는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그러나 벌어진 간극으로 장애인들이 받는 차별을 정당화해서는 안된다. 지난 2022년 이준석(당시 국민의힘 대표)은 “엘리베이터는 94% 가까이 설치가 됐고, 도대체 뭘 위한 투쟁이냐”고 따졌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만 이용해 지하철 역사를 이동하는 일은 보기보다 간단하지 않다.



 발목 부상으로 평소 통학 길에 이용하던 석계역에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본 적이 있다. 평소라면 걸어 올라갔을 계단을 대신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니 2번을 갈아타야 했다. 밖으로 나오기까지 총 3개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며 불편을 조금이나마 체감할 수 있었다. 이는 그들이 겪는 불편함의 극히 일부일 것이다. 엘리베이터는 수시로 고장나기 일쑤고, 환승할 때마다 엘리베이터를 찾아 돌아다니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탈시설 문제는 또 어떤가. 장애인 수용 시설은 장애인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선을 긋는다. 혹자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먼저 개선되고 탈시설 문제가 거론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시야에서 거둬버린 장애인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는 극히 드물다.



 탈시설을 위해서는 충분한 논의와 준비가 필요하다. 시설이 제공하는 편의를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21년 탈시설 후 욕창으로 생을 마감한 60대 하지마비 장애인의 사례가 시설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에서 지속적으로 자유를 보장해달라며 탈시설을 외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탈시설 논제 자체가 수면 아래에 있다는 것은 충분한 인식 제고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전장연에서는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를 내년 4월 20일까지 중지하기로 했다. 대신 이들은 공공장소·거리 등에 죽은 듯이 눕는 ‘다이-인(Die-in)’ 시위 방식을 택했다. 장애인의 날인 지난 20일(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다이-인 시위를 벌이던 전장연 활동가들 중 2명은 경찰에 연행됐다.



 전장연은 “비장애 중심 사회의 억압과 고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경석 전장연 공동대표는 “출근길에 지하철 연착 투쟁을 했으나 시민들의 불편을 고려해 지하철에 타지는 않겠으니, 승강장에 누워서 외치는 것만은 허락해달라는 의미”라며 “1년 안에 장애인 권리 법안들이 통과된다면 시위를 더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미장애인이라는 말이 있다. ‘아직은’ 장애인이 아닌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비장애인과는 구별되는 말이다. 우리나라에 등록된 장애인 중 88%는 후천적 장애다. 바꿔 말하면 누구든 장애를 가질 수 있다는 의미다. 불법 시위는 분명 잘못된 행동이지만, 그들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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