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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병에 걸린 파리 올림픽일까
홍민우 ㅣ 기사 승인 2024-06-24 17  |  691호 ㅣ 조회수 : 130
홍민우(시디·20)



파리 올림픽 개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홍보영상과 조감도를 통해 문화유산에서 펼쳐지는 경기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은 꽤 컸다. 하지만 구기종목에서의 한국 예선 탈락, 센강 수질 문제 등 올림픽이 가까워지며 드러나는 논란은 기대감을 꺼뜨리기도 했다. 반면 올림픽 현장이 궁금해지는 논란도 있는데, 유튜브 채널 크랩의 파리 올림픽 픽토그램 영상에 달린 댓글들이 궁금증의 계기였다.



픽토그램은 사물이나 시설, 사회적인 행위나 개념 따위를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게’ 단순화하여 나타낸 그림 문자이다. 올림픽 픽토그램의 기원이 되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선 운동기구를 표현했다. 영어권이 아닌 국가에서 열린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선 픽토그램에 신체를 활용했고, 올림픽에서의 픽토그램 활용이 공식화되었다. 픽토그램이 다국적 언어로써 완성된 체계를 갖춘 1972년 뮌헨 올림픽의 공식 디자이너 오틀 아이허는 “픽토그램은 기호의 성격을 가져야 하고, 일러스트레이션의 기능을 가져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이후 디자인 지침서가 만들어져 올림픽 픽토그램이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게 되었다. 명료함, 일관성, 가독성, 적응, 특징, 호환성의 6가지 지침이 바탕이 되면서 정치적, 문화적 맥락이 반영되었다.



이번 파리 올림픽 픽토그램의 맥락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픽토그램에 대한 체계화 시도로 보인다. 장비 강조, 일정한 프레임, 군사용 엠블럼에 영감을 받은 점이 비슷하다. 디자인 지침이 있음에도 이번에 다른 문법의 가독성 낮은 픽토그램이 어떻게 통과될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읽을 수 없는 픽토그램은 확실히 실패한 디자인이다, 통일성을 맞추기 위해 만든 X자 구도, 소극적 신체 사용, 부수적인 얇은 선 등의 표현 규칙이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게 문제이다.



하지만 그동안 신체 위주의 픽토그램과 문법이 다르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장비와 경기장으로 표현된 종목은 관중으로 하여금 표현 요소에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그 요소를 경기에서 직접 확인하도록 유도한다. 기존의 픽토그램이 인체의 직접적인 역동성과 함께 기록에 재미를 느끼는 경기 관람을 유도했다면, 이번 픽토그램은 도구, 경기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와 상호작용하는 인체의 아름다움을 간접적으로 살펴보게 했다. 펜싱 종목의 칼 표현과 사이클 종목의 바퀴 표현에서 보이는 미묘한 차이가 좋은 예시이다.



‘브레이킹’ 종목이 새로 추가된 것처럼 올림픽은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가독성 논란을 일으킨 픽토그램이 이렇게 도전적일 수 있었던 배경은 경기장을 찾을 수 있는 보조 수단이 픽토그램 이외에도 있으며, 화장실, 비상구와 다르게 종목의 가독성은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위급하지 않다는 점이다.



유튜브 영상으로 마련된 대화의 장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픽토그램 가독성 문제만 보고 시각 언어에 대한 가능성과 재미를 아예 무시하려는 분위기다. 언어의 사회성만을 얘기하며 이번 픽토그램을 옹호하는 사람을 ‘예술가병’ 걸린 병자로 취급하고, 고정된 표현 이외의 다른 의견을 쓸모없는 것으로 비아냥댄다. 다행인 것은 언어의 사회성과 더불어 창조성이나 역사성으로 해석하는 사람들 또한 의견을 냈다는 것이다. 이번 픽토그램이 인물의 다양성을 존중해서 패럴림픽 일부 종목에서도 같은 픽토그램을 사용할 수 있었다는 의견, 경기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제시한 피드백 등 디자인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실패한 디자인에 더 나은 설득력을 제시하는 의견이 있었다.



디자인은 확실히 대중을 위한 것이다. 올림픽이라는 공식적인 무대에서 새로운 방식을 선보이는 만큼 디자인에 충분한 설득력을 갖춰 그 방식이 품은 가능성과 재미를 대중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반대로 대중들도 앞으로 생길 수 있는 다른 논란에 대해선 ‘예술가병’ 취급하는 색안경을 쓰기보다 풍부한 생각과 대화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디자인의 관점과 재미를 이해하며 디자인의 설득력을 선명하게 만드는 열린 대화를 나누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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