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만의 거장 차이밍량 감독의 2003년 작 <안녕, 용문객잔>은 유행과 시대가 바뀌며 소멸해 가는 낡은 소극장의 마지막 모습을 잔잔하고 섬세하게 표현하며 점차 사라져가는 옛것들에 대한 작별 인사를 조용히 건넨다.
영화는 폐관 전 마지막 상영을 앞둔 1,000석 규모의 큰 극장인 “복화대극장”의 상영관을 비추며 시작한다. 극장 스크린에는 무협 영화 <용문객잔>의 첫 장면이 비치며 영화는 그 상영 시간 동안 극장의 구석구석과 그 안에 머무는 사람들을 조용히 비춘다. 스크린에서는 창검을 휘두르는 전투가 펼쳐지지만, 텅텅 빈 썰렁한 객석은 이와 대비되며 낯선 몰입감을 만들어낸다.
영화 속 등장인물 사이의 대화는 놀랍게도 거의 없다. 첫 대사가 나오기까지는 40여 분이 걸리지만, 침묵 속에서도 인물들의 움직임과 시선만으로 각자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영화관의 여자 매표원은 자신이 짝사랑하는 영사 기사에게 극장의 마지막 영업이 끝나기 전 자신의 마음을 전해보고자 끝없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고민하고, 일본인 게이 관객은 함께 밤을 보낼 이를 찾고자 누구든 눈을 맞춰보려 하지만 번번이 외면당한다. 상영 중인 영화 <용문객잔>의 주연으로 출연했던 두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출연했던 영화를 보고자 상영관을 찾았다.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영화를 관람하던 두 할아버지는 스크린에 둘의 대련 장면이 펼쳐지던 장면에서 사람들이 모두 중간에 나가고 텅 빈 극장에 덩그러니 남은 서로를 알아본다. 영화의 상영이 끝나고 관객들이 모두 퇴장한 후 약 2분간 텅 빈 관객석을 비추며 이어지는 정적은 관객들에게 강렬한 여운을 남기며 마지막 상영을 마치고 폐관되어 사라질 복화대극장을 떠나보내는 장례식과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조용하게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전하는 영화 <안녕, 용문객잔>은 등장인물 사이의 말 없는 대화, 감정 없는 이별 속에서 관객들에게 강렬한 감정를 전달한다. 오랜 시간 곁에 있었음에도 어느새 새로운 것들에게 밀려나 잊히는 것들을 기억하고 슬퍼하는 감정 말이다. 복화대극장의 마지막 상영처럼 작별을 준비하는 이들이 있다면 <안녕, 용문객잔>을 감상하며 조용히 작별 인사를 건네보는 것은 어떨까.
최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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