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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는 돕고 싶지만 예산 편성은 거부하는 정부
기사 승인 2022-11-22 10  |  667호 ㅣ 조회수 : 30

약자는 돕고 싶지만 예산 편성은 거부하는 정부



 여기 두 나라가 있다. 40년 만에 최대 폭의 물가 상승률을 기록하고, 고공 행진하는 물가를 따라잡지 못하는 임금 탓에 파업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지는 A 나라. 7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와 24년 만에 최대 폭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을 기록한 B 나라. 데칼코마니처럼 비슷한 경제 위기에 놓인 두 나라, 영국과 한국이다. 유사하게 나타나는 위기의 지표들 속에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두 나라의 수장이 택한 해법은 동일했다. ‘감세’를 중심으로 하는 긴축 재정 정책이다. 허나 안타깝게도 위기를 극복할 묘약이 아님은 생각보다 빨리 드러났다. 채권 가격의 폭락과 곤두박질치며 역대 최저치로 급락한 파운드화의 가치로 되려 악화된 경제 탓에 영국 트러스 총리는 최단기 재임이라는 오명과 함께 물러났다.



 트러스는 부자를 중심으로 한 감세를 통해 결국 모든 계층의 경제적 안정화를 꾀하겠다는 일명 ‘트러소노믹스’의 야심찬 목표 속에서 법인세 인하, 개인 소득세 인하 등을 강조했다. 사실 이러한 긴축 정책의 부작용은 이미 역사적 사례를 통해 입증됐다. 트러스의 롤모델 마거릿 대처 전 총리는 공격적인 긴축 정책을 펼쳤지만, 결과는 빈부격차의 심화로 인한 사회 계층화 현상의 확대였다. 효율과 성장을 우선 순위로 두어 약자 계층을 위한 복지성 정책은 후순위로 밀렸고, 대처의 임기 내 수상 질의응답 시간에는 계층화 현상에 대한 야당의 성토가 늘 함께 했다. 폭력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해 대규모 광산 노동자들을 한순간에 실업자 집단으로 만든 일 또한 유명하다. 오래전 일로 치부하기에는 2010년대 라트비아가 긴축 정책을 시도했다가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이 네 배로 폭증했던 최근 사례도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긴축을 정책 방향으로 설정한 윤 대통령은 최근 시정연설에서 ‘약자 복지’를 핵심 가치로 내걸었다. 이 지점이 문제다. 정부의 내년 예산 편성안에 따르면 노인을 위한 공공형 노인 일자리는 축소되고, 어르신 돌봄 예산도 80%라는 파격적인 축소를 단행한다. 초등 저학년의 보육 공백을 돕는 돌봄 교실 간식 지원 예산, 임산부 친환경 농식품 지원 예산은 모두 전액 삭감된다. 약자 복지의 실현을 위해 우선적으로 편성할 필요가 있는 예산들이 자그마치 10조 가량의 규모로 대량 삭감될 예정이다. 긴축을 통해 나라 곳간을 잠그겠다면서 동시에 약자 복지에 힘쓰겠다는 어불성설이다. 실질적 지원없이 마음으로만 약자들의 삶의 질 향상을 빌어주겠다는 것인가. 앞뒤가 맞지 않는 정부의 목표와 정책 방향의 통일을 위해선 약자 복지 적극 실현을 위한 확대 재정 정책으로 기조를 전환하거나, 긴축으로 가닥을 유지한 채 약자 복지 대신 ‘분배 대신 성장’으로 목표를 수정하는 편이 나아 보인다.



 정부는 최근 재정 준칙의 법제화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관리 재정 수지 적자를 GDP 대비 3%로 제한하고 국가채무 비율이 60%를 넘으면 적자 폭이 2%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도입안을 발표했다. 연내 법제화한다는 계획이다. 재정 준칙 도입은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재정 운용을 위해 일종의 자체 제동장치를 만든다는 뜻이다. 확대 재정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하더라도 방만한 재정 사용으로 인한 경제 지표 악화를 막아줄 장치가 생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약자 복지에의 의지를 천명하며 민생을 외치는 정부는 실패한 전례를 답습하지 말고 재정 준칙 하에서의 전략적 재정 확대 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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