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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괴물이 되다
기사 승인 2025-04-18 09  |  702호 ㅣ 조회수 : 287



▲ 김희남 초빙교수 (전 SBS 보도본부 국장)





동시다발성 대형 산불이 남긴 것



 불이 괴불처럼 다가왔다. 올봄 경상도를 휩쓴 산불 말이다.



 31명이 목숨을 잃었다. 주택 4천여 채를 비롯해 시설 8천여 곳이 피해를 입었다. 산불 영향 구역은 4만8천2백39 ha에 달한다. 서울 여의도(290ha)의 1백66배에 맞먹는 면적이다. 피해액은 1조5천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재난 컨트롤타워인 행정안전부 집계 결과다.



 같은 시기에 한 군데도 아니고 여러 곳에서 큰불이 났다. 지난달 22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영양, 안동, 영덕, 청송으로 번졌다. 하루 전날 발생한 경남 산청 산불은 합천과 지리산 국립공원 일부 지역까지 태웠고, 울산 울주군 산불도 같은 기간에 겹쳤다. 이런 동시다발성 대형 산불이 나면 진화 자원이 분산돼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



 기자들이 산불 현장을 보도할 때 자주 사용하는 용어가 있다. ‘화마’라는 표현이다. 화재를 마귀에 비유한 것이다. 실제로 대형 산불 현장을 취재해 보면 이 말이 절로 나온다. 나무 전체를 활활 태우는 수관화 현상이 일어날 때 산불의 온도는 섭씨 1천 도를 넘는다. 도자기를 굽는 불가마 온도와 비슷하다.



 이때 엄청난 불기운으로 상승기류가 형성되면서 도깨비불이라고 하는 비화 현상이 일어난다. 커다란 불덩어리가 하늘을 날아다니며 불이 여기저기 옮겨붙는 현상이다. 캄캄한 밤중에 보면 산봉우리가 통째로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모습이 도깨비처럼 공포감을 준다.



 방송기자 시절 직접 겪었던 에피소드 하나. 대형 산불을 배경으로 생방송을 하던 중이었다. 마지막 한두 문장을 읽어 내려갈 즈음. 맞은편 카메라 감독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알고 보니 뉴스를 시작할 때만 해도 꽤 멀리 있던 산불이 바로 내 등 뒤까지 닥쳐온 것이다. 생방송이라 중간에 끊을 수도 없고 서둘러 뉴스를 마치긴 했는데, 너무 놀라 중계차 장비를 어떻게 정리하고 달아났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산불이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피해 주민과 인터뷰하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허망하다고.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고. 삶의 터전도, 추억도 다 앗아갔다고. 실제로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엔 시커먼 재만 남는다. 모든 것이 한순간에 연기로 사라진다. 폭격을 맞아 폐허가 된 전쟁터가 따로 없다. 숲을 다시 조성하려면 20~30년이 걸린다. 숲의 기능까지 완전히 회복하는 데에는 50년이라는 세월이 걸린다.



 그런데 경상도 일대를 휩쓴 동시다발성 대형 산불은 올해 어쩌다 운이 나빠서 유난히 크게 번진 걸까. 답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사실 이번 같은 ‘괴물 산불’은 예고된 것이었다. 최근 몇 년 새 산불이 뚜렷한 변화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괴물처럼.



과거에 비해 달라진 특징은 우선 산불이 커지고 많아졌다는 것이다. 대형화, 전국화, 연중화로 요약할 수 있다. 동시다발성 발생,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점도 눈에 띄는 특징이다. 2023년 캐나다 전역의 동시다발 산불, 같은 해 100명의 목숨을 앗아간 미국 하와이 마우이 산불, 올해 초 수십 명의 사망자를 낸 캘리포니아 산불이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나라에선 해마다 500여 건의 크고 작은 산불이 발생한다. 과거 한 해 1~2건이던 대형 산불도 최근 몇 년 새 10건 정도로 늘었다. 2022년 6월 밀양 산불처럼 이전에 없던 여름철 대형 산불도 생겨났다.



 기후변화가 그 배경으로 지목되고 있다(2024.11.4 본보 696호 『미처 몰랐던 기후변화, 산불』). 기후변화로 건조화가 심해지면서 산불이 커지고 있다는 게 산림과학자와 기상학자들의 주장이다.



 숲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지난 반세기, 산림녹화를 국민운동으로 벌인 결과 우리 숲은 푸르게 우거졌다. 문제는 잡목이 많다는 것이다. 필요 이상으로 빼곡한 숲은 사람이 접근하기도 어렵고, 산불의 연료가 된다. 막 자라서 경제성도 없다.



 산림 정책 패러다임의 획기적인 전환을 이룰 때다. 지난 반세기 무작정 심고 키웠던 산림녹화 시대를 넘어 사회 문화적인 숲, 환경 생태적인 숲, 경제적인 숲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그래서 재난에 강한 숲, 인간과 함께하는 숲, 돈 되는 숲으로 거듭나야 한다.



 어느새 산불은 산속 재난을 넘어 국가 재난, 국가 안보의 개념이 됐다. 숲이 주는 혜택은 정말 크다. 돈으로 계산하면, 1인당 한 해 499만 원에 달한다(국립산림과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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