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윤지 기자
(안전·18)
아침에 눈을 뜨면 이어지는 언제나 비슷한 하루. 가끔은 힘들지만 평화롭고 즐거운 나날.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이 하루가 단 한 순간에 사라진다면 어떨까? 커다란 사고에 휘말린다거나 치료가 불가능한 심각한 병에 걸리게 된다는 것은 막연하고 드라마 속에나 나오는 이야기 같다. 그러나 ‘memento mori(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은 삶과 가장 멀면서도 가장 가까이에 있다.
‘앞 아니면 뒤잖소, 어서 정하시오’ 기자가 최근 관람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영화에 나오는 대사다. 영화에서 살인마 ‘안톤 시거’는 우연히 들어간 가게 주인에게 동전 던지기를 제안한다. 담보로 걸린 것은 다름 아닌 가게 주인의 목숨이다. 평소와 같이 가게를 지키던 주인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동전 던지기를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 있을까. 어떤 말로 둘러대도 안톤 시거는 자비가 없다.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밖에 없다. 앞 또는 뒤.
삶의 끝에 죽음이 있다고 한다. 기자는 질문하고 싶다. 그렇다면 그 끝은 도대체 언제인가. 영화에 나온 사람의 대부분이 안톤 시거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죽임당한다. 끝은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무자비하게 찾아온다.
처음으로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건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언제부턴가 건강했던 할아버지가 아파서 거동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할아버지는 낯설고 다가가기 힘들게 느껴졌다. 사실 별로 다가가려고 노력한 것 같지도 않지만, 그때는 시골집 거실 한켠에 언제까지고 할아버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옹기종기 모여 저녁을 먹고 있는데 걸려온 전화 한 통에 어머니의 표정이 굳어졌고 그 이후로 할아버지를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다. 당시에는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주변 어른들을 따라 울었던 것 같다. 특별히 할아버지와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았던 터라 지금 머릿속에 남은 건 흐릿한 이미지가 전부지만 만약 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보던 날, 그게 끝인 줄 알았다면 ‘무언가 달라지지는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처음으로 예고 없이 찾아온 ‘죽음’이란 것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얼떨떨하게 남아있다.
뉴스를 보면 교통사고, 화재, 안전사고 등으로 인한 사망 사건이나 살인 같은 사건에 대한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런 사건들이 본인에게 일어날 것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당장 내일도 살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히는 죽음이라는 것을 전제로 해본 적도 없는 것은 물론이고 삶에 관해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영화 속 피해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들도 살해당하기 전까지 언제나처럼 평범한 아침을 맞이했을 것이다. 어쩌면 기념일 같이 특별한 날이었거나 상사한테 혼나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사고 중 어디에도 ‘오늘 죽는다’는 예정은 없었다. 죽음이 언제라도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다시 영화 속에서 동전 던지기를 하는 상황으로 돌아와 보자. 기자는 세상 사람들이 매일, 매 순간 동전 던지기를 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아침에 알람을 듣고 일어나는가 일어나지 않는가와 같이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 병에 걸리는가 걸리지 않는가, 그리고 삶인가 죽음인가. 안톤 시거가 본인이 동전의 앞, 뒷면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가게 주인에게 직접 선택하도록 기회를 준 것도 그가 삶과 죽음의 우연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영화를 보면 재밌는 점이 있다. 절대적이고 영원할 것 같던 살인마가 영화 끝에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큰 부상을 입는다. 안톤 시거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에 대한 동전 던지기를 실패한 것이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쥐락펴락하던 사이코 살인마도 결국에는 ‘인생의 동전 뒤집기’를 피해갈 수 없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평화로운 일상 중에서 언제라도 찾아온다. 그러나 현대사회처럼 팍팍한 삶을 살아가다보면 죽음에 대해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어짜피 모두 죽는다며 죽음에 좌절해 삶을 놓으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죽음을 기억한다면, 현재 누리고 있는 삶의 소중함을 느끼고 허투루 쓰지 않는다면 분명 내일은 더 괜찮은 삶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