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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도의 밀도
정혜원 ㅣ 기사 승인 2025-09-08 17  |  706호 ㅣ 조회수 : 35



▲ 정혜원 기자(컴공·24)



 



 주변의 빛에 따라 색이 달라지듯, 진실도 달라진다. 조도에 따라 달라지는 진실을 과연 ‘영원한 진리’라 부를 수 있을까?



 “어떤 색으로 보이는가?” 한때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사진이 있었다. 흰 드레스가 파란색으로 보이기도 하고, 회색 구체가 흰색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때는 정답을 찾는 데 급급했지만, 지금은 정답이 없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우리가 보는 진실은 과연 ‘제대로 본 것’일까? 그 진실을 담는 언어는 옳게 표현되고 있을까? 그 말을 듣는 나의 귀는 온전한가? 인간은 그걸 이해하고 음미할 만큼 천천히 보고 있는가? 햇빛, 주변 조도, 뇌의 보정이 겹치면 같은 대상도 다른 색으로 보인다. 그러니 내가 본 세계를 언제나 진실이라 말할 수는 없다. 이 세상에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믿음과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다.



 조도가 흔들리면 영상도 흔들린다. 빛은 결코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거울 속에 반사된 나 역시 ‘진짜 나’라고 단정할 수 없다. 거울을 보자. 나를 꽤 닮은 거울 속 인물의 눈동자 색은 갈색인지 검정인지 모호하고, 주근깨는 희미하다. 피부는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하다. 키는 나와 비슷하거나 조금 작다.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여기 서 있는 내가 진짜인지, 거울 속 낯선 이가 진짜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추하고, 더 못생겼다.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자. 그는 슬프거나 기쁘거나 두려워한다. 바로 앞에 선 나를 닮았을까 봐 두려워한다. 결국 길을 잃는다. 아무도 보지 못하고, 아무도 구원할 수 없는 마음속의 길을 헤맨다.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잃은 채 몇 년을 걷는다.



 “길을 헤맨 만큼 자기 땅이 된다” 얼마나 큰 우주를 품었기에 이렇게 오래 방황하는가. 산산조각 난 거울이 나를 비추듯, 나는 그 조각과 균열 사이로 흘러간다. 어둠 속을 유영하다가, 자신이 누구였는지, 여기가 어딘지 잊는다. 다시 부서지고, 다시 쪼개지다가, 결국 먼지와 가루가 된다. 그즈음 찬란한 타인을 만난다. 폭발이 일어나 별이 되고, 지구가 되고, 긴 시간이 흐른 뒤 인간이 된다. 다시 ‘나’가 된다. 다시 빛을 쬐는 내가 된다. 어떤 빛은 매우 강해서 나를 통해 반사되기도 한다. 그 빛을 빌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하게 빛난다. 다시 거울 앞에 선다. 빛을 잃지 않기 위해, 나는 빛을 모으고 방해물을 치우며 그림자를 없애려 애쓴다. 그렇게 빛은 더욱 선명해진다.



 밝게 빛나는 태양의 햇빛이 탐이 난다. 태양을 바라보면 눈이 멀기 때문에 그 주변을 맴돌며 햇빛을 흡수한다. 빛은 색과 달라서,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일수록 더 아름다운 색을 반사할 수 있다. 그때마다 다른 파장의 내가 잠시 머문다. 그러다 달이 나타나 빛을 가리기도 하고, 해가 저물어 세상이 다시 어두워진다. 하지만 빛을 충분히 맞았던 나는, 아주 자그마한 별이 돼 있을 것이다. 무너졌다면 무너진 자리의 음영을 기록하고, 일어섰다면 일어선 이유의 빛을 기억한다. 그 기록이 쌓여 ‘나’가 된다.



 사진에서 원하는 색감의 빛을 얻으려면 조건이 먼저 맞아야 한다. 마음의 조도도 마찬가지다. 분노의 밝기를 낮추고, 확신의 대비를 줄이며, 타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소음을 줄인다. 결국 내가 믿을 수 있는 진실은, 빛을 비춰 상을 제대로 보는 것과 같다. 끊임없이 비추고, 맞추고, 확인하고, 고쳐 쓰는 과정. 마치 신문 기사를 쓰는 일과도 닮았다. 흐릿한 상을 조절하고 조도의 밀도를 높여 선명한 자국을 남기듯, 나를 비추던 찬란한 타인이 되기 위해 상대의 모습을 비추려 애쓰다 보면 내 색도 함께 조정된다. 그렇게 만난 진실은 하나로 고정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서로에게는 덜 왜곡된 색으로 남을 것이다. 빛을 섞듯, 우리는 함께 더 밝게 빛난다.



 빛은 늘 변한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오늘의 빛으로 오늘의 진실을 본다. 내일의 빛으로 내일의 진실을 다시 본다. 그 반복 속에서 나는 조금씩 더 정확해진다. 보이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기보다, 보이는 방식을 함께 살피는 사람으로 남겠다. 그래서 언젠가 누군가 내 삶을 한 장의 사진처럼 바라보게 되더라도, 그 사진이 어떤 빛 아래에서 찍혔는지까지 함께 전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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