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 31일(금)부터 11월 1일(토)까지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진행됐다. 과거 참여정부 시기 부산에서 개최된 2005 APEC 정상회의 이후 20년 만이다.
한미 양국 정상은 이번 APEC 기간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이번 협상은 지난 8월 큰 틀에서의 합의 이후 두 달 넘게 이어 온 협상을 최종 마무리하는 자리였다. 특히 초미의 관심사였던 대미 투자 조건에 대해 한국은 미국에 3,500억 달러(약 500조원) 중 2,000억 달러를 현금으로 투자하고, 1,500억 달러는 조선업 펀드로 구성하기로 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 간 협상 방식은 기존 다자주의적 합의에서 벗어나 압박과 거래 중심 논리에 기초한다. 이러한 협상 전략은 즉각적 성과와 상징적 승리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실용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국가 간 상호 의존이 강조된 오늘날 상대를 압박하고 거래 논리에 기반한 협상이 장기적 신뢰와 안정성까지 보장할 수 있을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한편 이번 APEC에서 포항 연안에 정박한 크루즈선은 단순 숙박을 넘어 경제인들의 상시 교류 거점으로 기능했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임차한 두 척의 선박은 다목적 회의실·연회장·레스토랑 등 소통 인프라를 한 공간에 집약해 본회의 이후 비공식 미팅과 즉석 협의가 연쇄적으로 이어지도록 설계됐다. 경주와 포항의 지리적 인접성은 셔틀 동선과 경호 통제를 효율화해 숙소-행사-네트워킹의 선순환을 가능케 했다. 물론 낮은 탑승률 등의 한계도 드러났지만, 숙박난 해소와 교류의 집중도를 동시에 달성하려는 시도 자체는 의미가 크다. 거대한 바다 위 호텔을 소통의 장으로 전환한 이번 실험은, 국제행사 숙소가 ‘의식주’ 그 이상이어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를 한국식 해법으로 구체화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무엇보다 공간의 제약을 창의적 발상으로 돌파한 이번 시도는 향후 국내 개최 국제행사의 운영 방식에도 적잖은 시사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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