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 그거 똥겜이잖아.”
슬프게도 내가 재미를 느꼈던 게임은 이미 게이머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은 게임이었다. 심각한 버그, 최신 컴퓨터에서도 렉 걸릴 정도의 발적화, 터무니없이 높게 설정된 몬스터의 난이도. 악명이란 악명은 다 가지고 있던 게임이었다. 같이 하자는 내 제안에 친구들은 “안사요, 안사”라며 성냥팔이 소녀의 차가운 도시 사람들처럼 대꾸했다.
그렇지만 나에겐 너무나도 재밌는 게임이었고 다들 즐겼으면 하는 열망이 너무나 컸다. 사람들은 흔히 똥겜이라며 무시하지만 오히려 아무도 안하는 똥겜이기에 가지는 엄청난 장점이 있다.
첫째로 게임을 하는 사람이 적다. 이는 단점이 될 수 있지만 생각을 달리 해보면 충분히 장점이 될 수 있다. RPG게임의 스토리에서 몬스터는 사람들을 덮치는 나쁜 존재다. 하지만 게임을 플레이해보면 몬스터는 10마리 남짓한데 사람은 20~30명이 모여 있는 경우가 흔하다. 여러 명의 사람이 소수의 몬스터를 사냥하다보면 불쌍한 마음이 들어 도저히 게임에 몰입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똥겜에서는 완벽한 몰입이 가능하다. 어느 맵을 가더라도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고 몬스터만 우글우글 존재한다. 보통 구세주나 영웅으로 설정되는 게임 주인공의 설정으로 볼 때 만약 나마저 이 게임을 하지 않는다면 몬스터로부터 세상이 지배당할 것만 같다.
둘째로 구질구질하게 사랑스런 유저들이 많다. “짜증나서 이 게임 안합니다, 접겠습니다” 라고 채팅이 올라오면 “꼬우면 접지 마. 너 말고는 할 사람 없으니까”라거나 “응 너 없으면 게임 망해~ 돌아와”라며 말투는 단호하지만 그 내용은 애걸복걸하는 답장이 올라온다. 그리고 많은 게임이 게임회사에서 망하지 않게 노력한다면 똥겜들은 유저가 게임이 망하지 않게 노력한다. 나만해도 게임이 흥했으면 좋겠다는 일념으로 인터넷에 홍보글도 작성해서 올렸고 지금도 똥겜 옹호글을 투고하고 있다.
이런 걸 보면 똥겜은 인류가 멸망하기 직전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살아남은 생존자를 만나게 되서 기쁜 마음과, 뭐라도 나눠주려 하고 인류의 존속을 염원하는 끈끈한 전우애가 똥겜에서 느껴진다.
요즘도 열심히 주위 사람들에게 그 게임을 추천한다. 사이비 약장수 취급을 받거나 똥겜을 너무 많이 해서 애가 똥독이 올랐다 라는 소리를 듣지만 내가 사랑하는 게임이 다른 사람들한테도 사랑받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