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생은 처음이라』*라는 드라마에서 남자주인공은 이런 말을 한다. 스무 살, 서른. 그런 시간을 담당하는 부위가 두뇌 바깥 부분의 신피질입니다. 스무 살이니까, 서른이라서, 곧 마흔인데. 시간이란 걸 그렇게 분초로 나누며 자신을 가두는 종족은 지구상에 인간밖에 없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나이라는 약점을 공략해서 돈을 쓰고 감정을 소비하게 만들죠. 그게 인간이 진화의 대가로 얻은 신피질의 재앙입니다.
하루하루가 바쁜 사람들에게 ‘신피질의 재앙’이란 머릿속에 맴돌 정도로 매력적인 개념일 수 있다. 기자는 20살이 됐을 때부터 지난 시간을 돌이키며 과연 얼마나 많은 날을 신피질의 재앙 속에 살았나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한국 사람들, 적어도 주변 사람들만 봐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인생을 분초로 나눠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의 시간을 쪼개고 역할에 충실하게 사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자신을 각성시키고 발전해나가기 때문에 약간의 요행이 있었다면 원하는 것들을 얻었으리라. 그리고 그중 경험마저 충분한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시간을 분배할 작은 여유를 가졌을 수도 있다.
우리에게 신피질이 있는 것은 과연 재앙일까? 신피질로 인해 스스로 각성한다는 점으로 볼 때 신피질은 재앙이 아니라 행복이다. 좀 더 뛰어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는 분명 시간 소요가 있다. 어떤 노력이냐에 따라 효과가 배가 되게 하는 시기도 분명히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시기에 맞춰 효과적인 자기계발을 하고자 한다면 신피질의 존재는 긍정적으로 보인다. 물론 그 과정에는 여러 심리적·시공간적·경제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사람은 어려움을 겪으며 성장한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단 적절한 시기에 경험하고 학습해야 하는 것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때의 문제점을 생각된다면 더 논리적일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 자신의 일생 한 부분을 주체적으로 살며 자유롭게 역할을 부여하고 수행할 수 있는 것도 일종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결코 신피질이 주는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은 은연중에 스스로 동기부여하고 발전하고자 한다. 신피질의 영향이 아주 강력하게 우리 생각과 행동 깊숙이 침투하고 있는 지금을 부정하는 것은 과연 의미가 있을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처럼 우리는 이를 영양가 있는 사고 배경으로 잘 활용해 자신의 인생을 탐닉하는 훌륭한 태도로 삶에 임하는 진정한 어른이 돼야 한다. 매일 아침마다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있다면 재앙 속에서 행복을 만끽하리라.
기자에게 2018년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도전을 하며 조금씩 책임감을 가질 것이다. 독자들도 각자의 소망을 이루는 한 해이길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